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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마치 전설 속 도시에 온 듯

by 메르쿠리오 2020. 11. 20.

두 번째 유럽 여행 - 12일 차 ; 스페인

 

 행복한 그라나다를 뒤로 하고 다음 장소로 가는 날이 왔다. 아직 그래도 스페인의 남부지방인 '안달루시아'를 따라 가는 것이라 소도시의 매력을 더 맛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고 이동했다. 원래 '세비야'로 바로 가려고 했지만, 스페인을 갔다 온 친구한테 물어보니 세비야를 가기 전에 '론다'라는 곳을 꼭 들리라고 했다. 론다는 절벽 위에 있는 마을이라고 불리는데 티비 프로그램인 '꽃보다 할배'에서도 나왔다고 했다. 여행프로는 사실 잘 보지를 않아서 몰랐는데, 일단 친구가 추천해줬기 때문에 론다를 들렸다 세비야를 가기로 했다.

 아직도 그런지는 모르겠는데, 그라나다에서 론다를 갈 때 검색할때는 기차로 한 번에 간다고 나오는 거에 반해 실제로는 버스를 1시간 정도 탄 후 기차를 갈아타서 가는 편밖에 없었다. 기차역이 공사 중이어서 버스를 타고 다른 지방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것 같은데, 꽤 오랫동안 공사를 했나 보다. 친구도 스페인을 갔다 온 지 좀 오래되었는데 아직까지도 공사 중인걸 보면...

 여튼 3시간 반이 걸려 론다에 도착했을 때 첫 이미지는 미국 서부영화에서 카우보이들이 사는 느낌이었다. 절벽 위의 마을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위험할 줄 알았는데, 막상 와보니 절벽 끝에도 집들이 옹기종기 있는 것뿐, 그냥 작은 마을이었다. 

깔끔하고 조용했던 '론다'의 거리. 이외로 관광객이 많지 않았다.

 길을 따라 쭉 가 보니, 큰 다리 하나가 나왔다. 그 다리를 기점으로 절벽 위에 집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드디어 론다에 왔구나라는 것을 실감하게 해 주었다. 아래로도 길이 나 있는걸 보면 절벽 아래도 가볼 수 있는 것 같은데, 아쉽게도 시간이 없어서 내려가 보지는 못했다.

큰 다리를 기점으로 주변 건물들이 절벽 끝까지 자리잡고 있었다. 생각보다 위험해 보이지는 않았다.

 조금 아쉬웠던게, 이 다리를 제외하곤 특별하다고 느낄만한 것은 없었다. 그래도 거리가 한적한 편이어서 조용히 여행하기에는 좋았다. 사진을 찍었을 때 사람이 나밖에 보이지 않아서 단독샷을 찍기엔 최고의 장소였다. 거기다 날씨도 정말 완벽해서, 왜 유럽이 여름에 성수기인지 단번에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한적한 곳에서 사진을 찍다가 단독샷에 신나 춤을 추고 있는 중이다...

 아까 반대편에서 본 절벽 위의 하얀 건물까지 오게 되었다. 만약 오늘 저 아래로 내려갔다면, 올라오는 데에도 하루는 꼬박 걸렸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중에 여유가 많이 있으면 론다에 들려 저 아래까지 가 봐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계속 보고 있으니 론다를 이렇게 건설한 이유가 뭘까 궁금하기도 했다.

 광장으로 돌아오니 관광용 마차도 볼 수 있었다. 확실히 론다랑 잘 어울리는 이미지였다. 저걸 탈까 말까 고민을 했지만, 옆집에서 맥주를 무려 테이크아웃으로도 팔고 있길래 엄한데 돈 쓰지 말고 술이나 먹자고 해 고민 없이 술집으로 갔다. 거기 직원이 젊은 사람이었는데, 스페인어밖에 불가능해 대화를 진행하진 못했다. 그러다가 그 직원이 나보고 계속 '안달루시아'라는 말을 했는데, 뭘 말하고 싶은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주변 색과 동화되어 보였던 백마. 아직 다리는 튼튼하니 교통비를 줄여 술을 더 마시기로 했다.

 맥주를 테이크아웃 한 뒤 광장을 지나 내려가 큰 나무들이 있는 잔디밭에 누웠다. 이런 평원에서 맥주를 마시니 이게 바로 소확행이 아닐까 싶었다. 마치 피톤치드와 맥주를 같이 마시는 느낌이었다. 한 잔만 테이크 아웃한 게 너무 아쉬워서 한잔을 더 사 올까 고민까지 했다.

햇빛을 피해 그늘에 자리를 잡고 있는 친구들. 소소한건데도 불구하고 정말 기억에 많이 남았던 곳이다.

 누워서 짧게 졸기도 하고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절벽 마을이란 이미지를 생각하고 온 곳이었는데, 오히려 이런 잔디밭에 앉아 시간을 보낸 게 더 생각이 많이 났던 곳이었다. 물론 우리가 너무 짧게 지나쳐서 론다의 아름다움을 다 못 본 것일 수도 있다. 아쉽게도 론다에서 세비야를 가는 버스는 6시 반이 막차였기 때문에 다시 버스정류장까지 빠르게 움직였다. 아직도 한낮 같아서 시계를 보지 않았다면 버스를 놓쳤을 것이다. 

 2시간을 좀 넘게 달리니 세비야에 도착했다. 9시쯤 되었는데도 날이 밝아서 숙소까지는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확실히 바르셀로나에서 너무 크게 데이고 나니, 그냥 보통 숙소인데도 우리끼리 정말 다행이다 말하며 짐을 풀었다. 오히려 더 마음에 들었던 건 세비야 먹자골목(?)에 숙소가 자리 잡고 있어서 짐을 풀고 바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심지어 배고파서 숙소 앞에 아무 곳이나 들어갔는데도 불구하고 너무 맛있었다.

새우 듬뿍 감바스와 해산물 빠에야, 처음 보는 소꼬리 찜까지 다 맛있었다. 특히 소꼬리찜은 보이는대로 갈비같은 느낌이다.

 든든하게 저녁을 먹고 나와 먹자골목을 빠져나오니 세비야의 대성당 끄트머리가 정말 아름답게 유혹하고 있었다. 건물들 사이로 빼꼼하고 머리가 나와있는 곳을 무작정 걸어갔더니 기대한 대로 아름다운 대성당이 보였다. 크기도 엄청 커서 카메라로 성당을 담기 힘들었다.

저 탑에 홀린듯이 걸어갔다. 길이 있는지 없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건물들 사이를 통과해서 보니
문을 넘어가 직접 성당을 마주했을 땐, 마치 전설 속 황금도시인 '엘도라도'를 찾은 기분이었다.

 정말 전설 속 도시를 찾은 것 같았다. 너무 아름다운 대성당에 빠져 당장 마실 맥주가 필요했지만 아쉽게도 이 길거리에선 맥주를 파는 사람이 없었다. 한참을 대성당에 빠져 구경한 뒤 다른 골목으로 나가서 하늘을 보았을 때 초승달이 밤하늘 센터에 자리 잡고 있었다. 소도시라 그런지 밤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위험한 느낌은 없었다. 한적해진 거리들을 담은 뒤 숙소로 천천히 돌아갔다.

이날 밤 나는 학자들이 찾지 못했던 '엘도라도'를 찾은 것 같았다. 아직까지도 스페인에서 가장 좋았던 도시로 기억에 남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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