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해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by 메르쿠리오 2020. 11. 11.

두 번째 유럽 여행 - 10일 차 ; 스페인

 

 그지 같은 숙소를 빨리 나와 공항으로 바로 향했다. 국내선이기에 1시간 전 도착해 체크인까지 여유롭게 끝냈지만, 우리가 예약한 부엘링 항공이 악명 높은 걸로 유명한 줄은 그제야 알게 되었다. 보딩 타임이 되니 갑자기 스페인어로 뭐라 뭐라 하는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인포로 가서 물어보니 역시 안 좋은 느낌은 틀리지 않는 것이 비행기가 연착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너무 빈번한지 몇몇 사람들 말고는 체념하고 다 조용히 기다렸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부엘링 항공은 원래부터 딜레이가 자주 되고 뻔뻔하다고 얘기가 많았다.

 오전에 도착해야 하는 시간인데, 딜레이가 되는 바람에 오후에 그라나다에 도착했다. 바르셀로나와 반대로 소도시여서 걸어서도 웬만한 곳은 다 충분히 다닐 수 있었다. 숙소를 갔는데 이 전 숙소가 너무 최악이였는지는 몰라도 호스텔을 예악 했음에도 불구하고 호텔급 시설이었다. 도미토리인데 3인 1실로 배정을 해 주었고 거기다 무려 모든 침대가 1층 침대였다. 침대에 한번 누워서 편함을 만끽하고 점심부터 먹으러 나갔다.

 점심으로 메뉴 델 디아를 하는 곳을 들어갔는데, 직원이 한국사람이냐고 물어보더니 맞다고 하니까 너무 좋아했다. 알고 보니 가게 주인인 할아버지가 한국 분이셨고, 그 손자분이 일을 도와주고 있다고 했다. 손자분이 할 줄 아는 한국어는 '할아버지' 밖에 없다고 하면서 우리한테 할아버지 is Korean 이라고 얘기했다.

한국손님이 왔다고 후식까지 푸짐하게 줬던 레스토랑. 너무 잘해주셔서 남길 수가 없다 보니 정말 배가 터지는줄 알았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밥을 먹다 보니 갑자기 불현듯 생각난 것이 있었다. 오늘 오전 비행기로 날라오는 줄 알고 오후에 알함브라 궁전을 예약했는데, 우리가 밥을 2시간 동안 먹을 거라곤 생각을 하지 못했다. 안 그래도 비행기 시간이 딜레이 돼서 여유가 없었는데. 바로 계산을 하고 지금 바로 알함브라 궁전으로 가봐야 한다고 말한 뒤 바로 뛸 수는 없어서 최대한 경보로 빠르게 갔다. 심지어 알함브라 궁전 가는 길은 언덕이라 빨리 가다가 너무 힘들어서 토할뻔했다.

 시간 안에 도착은 했는데, 티켓을 보여 주니 '나사르 궁전'은 관람 30분 전에 기달려야 보통 관광이 가능하다고 했다. 그래서 빨리 뛰어가라고 해서 갔는데, 알함브라 궁전 규모가 너무 커서 결국 나사르 궁전은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래도 알함브라 궁전 자체는 관람이 가능해서라는 마인드로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사르 궁전을 관람할 수 없어서 아쉬웠지만, 날씨가 정말 완벽해서 주변을 보니 아쉬운 마음은 금방 사라졌다.

 궁전도 궁전인데 정원 규모가 정말 어마어마했다. 궁전은 중세 시대 느낌이였지만, 정원은 근시대 같은 느낌이 강했다. 그리고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나올 법한 미로정원 같은 곳도 있어서 정말 아름다웠다. 

혼자 메이즈러너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돌아다녔던 미로 정원. 말이 미로지 사실은 다 뻥 뚫려있다.

 정말 구석구석 너무 예쁜곳이 많았다. 궁전 벽을 타고 자라는 꽃들과 일자로 줄지어있는 작은 풀과 나무들, 그리고 작은 분수까지. 중세시대에 여기서 살던 왕은 무슨 복을 받아서 여기서 살게 되었을까 생각되는 곳이었다. 건물의 창 사이로 보이는 시내도 정말 환상적이었다. 

이런 느낌의 배경이 정말 많았던 알함브라 궁전. 특히 사이사이로 내려다 볼 수 있는 시내 전경은 정말 최고였다.

 가다가 또 한번 아름다운 정원이 나와 사진을 찍으려고 뒤에 있는 펜스 같은 곳에 손을 댔는데, 너무 헐렁한 나머지 손을 헛디뎠다. 그래서 넘어졌는데 바로 앞에 작은 운하가 있었다. 불행 중 다행히도 운하 사이에 몸이 껴서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옷에 진흙이 범벅이 되어 결국 그 이후로 이 옷은 입을 수 없었다...

저 정원이 너무 아름답게 보여 사진을 찍으려고 했는데, 정말 위험할 뻔했다. 그래도 사진에선 나름 평정심을 유지한 모습이다.

 그 뒤로 혼자 여행하고 있는 한국 분을 만났다. 어쩌다 보니 같이 알함브라 궁전을 구경하게 되었다. 궁전에 대해서 얘기하는 중 궁전 어디 어디를 둘러봤냐고 해 지각해서 어디를 못 봤다, 정원만 둘러봤다 얘기를 하니 '알카사바'를 갔다 오라고 했다. 거기는 티켓당 딱 한 번만 입장이 가능하다고 했는데, 그분은 이미 입장을 하고 와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구경하고 오라고 했다. 

 알카사바에서는 창밖으로 조금씩 보이던 시내를 뻥 뚫린 하늘과 함께 볼 수 있었다. 막상 이렇게 보니 칙칙한 색의 집들이 조금 아쉬웠는데, 그래도 확실히 고대 도시 느낌이 나서 멋있었다.

옅은 흙색으로 가득 찬 고대 도시같은 느낌이였다. 확실히 날씨가 다 한것 같다.

 위에서 알카사바의 내부를 보니 되게 사각형들로 정리가 잘 되어있었다. 아쉬웠던 건, 자리만 남아있을 뿐 물건같은 것은 하나도 없어서 어떤 곳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탑에서 내려다 본 알카사바. 확실히 아무것도 알수가 없으니 재미는 별로 없었다.

 알카사바를 마지막으로 다시 그 여성분과 만나서 시내로 내려갔다. 생각해보니 그라나다에 도착해서 밥만 먹고 바로 알함브라 궁전으로 와 시내 구경은 제대로 하지도 못했다. 워낙 작아서 사실 크게 구경할 것은 없었지만.

시내에서 본 귀여운 신호등.

 시내로 내려오니 7시쯤 되었다. 그래도 밥을 먹고 난 후에 계속 걷기만 해서그런지 어느 정도 소화가 돼서 밥을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친구분께서 알아본 곳이 있다고 해 찾아갔는데, 가게 오픈이 밤 8시부터였다. 여름에 스페인 사람들은 워낙 해가 늦게 지다 보니 저녁을 늦게 먹나 보다. 이곳저곳 구경하다 보니 그래도 시간은 금방 갔다. 그 친구가 알아본 곳은 스페인의 식사문화 중 하나인 '타파스'였는데, 정말 좋은 문화였다. 특히, 그라나다에선 술을 시키면 안주를 공짜로 주는데 가게마다 다르겠지만, 주인이 그때그때 즉석으로 다른 안주를 갖다 주셨다.

첫 번째 타파스 집에서 먹은 첫 번째 안주와 두 번째 안주. 두 번째 안주는 스페인식 쏘시지인 '쵸리쏘'인데 짭짤하고 맛있었다.

 타파스를 경험하고 나니 다른 집에서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 그래서 손님이 많아 보이는 곳으로 가 앉아서 주문하는데, 여기서 더 황당하고 웃긴 경험을 했다. 원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같이 운영하시는 식당인데, 할머니가 안주를 내주시고 할아버지가 서빙을 하시는 곳이였나보다. 그런데 할머니가 오늘 무슨 이유 인진 몰라도 안 나오셔서 간단한 튀김류만 가능했다. 그런데 할아버지는 영어가 전혀 안되셔서 우리와 소통이 불가능했다. 그래서 온갖 몸짓 발짓을 해서 주문을 해 처음에는 타파스로 엄청난 양의 튀김을 받았지만, 두 번째 타파스를 시키니 너네가 먹고 싶은 거 만들어 먹으라는 느낌으로 말하시며 우리 일행 중 여성분을 데리고 주방으로 보냈다. 그래서 그 여성분이 음식을 대충 보고 미트볼 같은 고기와 갈비찜같이 생긴 것을 가지고 왔다. 할아버지도 대단하지만 진짜로 요리를 해 온 친구도 대단했다. 덕분에 이 이야기로 오랫동안 안주거리삼아 얘기할 수 있었다.

위의 튀김을 빼고는 다 그 친구가 서빙해준 음식. 그 친구보고 서빙 잘한다고 여기서 일하라고 하며 재밌는 농담도 오고갔다.

 이러한 재밌는 해프닝을 끝내고 호스텔 사장님이 야경 포인트로 추천해주신 '성 니콜라스 전망대'를 가기로 했다. 가는 길목에 큰 음악소리가 들려서 가 봤는데, 무슨 축제가 있었나 보다. 그런데 젊은 사람들은 하나도 안 보이고 노년을 위한 축제인지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단체로 모여서 춤을 추고 있었는데 소도시여서 그런지 그라나다와 정말 잘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그라나다 주민 모두가 나와서 춤을 추는듯 했다. 코로나가 도사리는 요즘엔 상상도 못했을 법한 분위기여서 더 그립다.

 전망대이다 보니 올라가는 길이 꽤 멀었다. 그래도 은은하게 불빛도 있었고 올라가는 사람들도 자주 보여 위험하단 생각은 들지 않았다. 

전망대를 향해 가면서 낮에 못보던 건물들도 볼 수 있었다. 낮엔 그렇게 더웠는데, 밤이 되니까 생각보다 엄청 추웠다.

 고생해서 올라가 전경을 보는 순간, 그간 했던 고생이 싹 다 날라가는 느낌이었다. 화룡점정으로 알함브라 궁전의 야경까지 보였다. 역시 현지인의 추천을 듣길 잘했다. 소도시라고 생각했지만, 올라와서 보니 생각보다 큰 느낌의 도시였다. 

알함브라 궁전까지 더해져 정말 아름다웠던 '성 니콜라스 전망대'의 야경.

 전망대에서 한참을 구경한 후 내려갔다. 적막한 곳에 은은한 가로등 불빛 하나만 켜져 있는 것을 보니 너무 감성적이었다. 최근에 본 드라마인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처럼, 그라나다에서 있던 하루하루가 강렬한 추억으로 자리 잡았었다. 아니면 바르셀로나의 너무 안 좋은 숙소 기억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라나다가 더 돋보이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그라나다는 정말 잊지 못할 장소 중 한 곳임에는 틀림없었다.

정말 낭만적이였던 그라나다의 골목 속 가로등 불빛. 이런 소소한 야경이 더 낭만적일수도 있다고 느꼈던 그라나다.

 


이 블로그에 있는 모든 사진은 제가 직접 여행지 가서 찍은 것입니다. 사진을 이용하시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남겨주세요.

'여행기(해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치 전설 속 도시에 온 듯  (0) 2020.11.20
스페인의 산토리니  (0) 2020.11.16
악몽같은 숙소의 마지막  (0) 2020.11.06
바르셀로나의 독특한 매력  (0) 2020.11.02
완벽한 밸런스(?)  (0) 2020.10.2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