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유럽 여행 - 7일 차 ; 스페인
밤새 제대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여름이라 안 그래도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 덜덜거리는 소리와 창문도 없어 환기도 안돼서 이상한 냄새를 풀풀 풍기는데 제대로 잠을 잘 리가 만무했다.
대충 눈만 감고 있다가 짜증이 나 휴대폰 시계를 보니 다행인건지 아침이 되어있었다. 친구들이 잠에서 깼을까 하고 옆방으로 가 봤는데 아니나 다를까, 내 친구들도 똑같이 눈만 감고 있었다. 내가 와서 부르니 바로 욕부터 나오면서 로비로 같이 나올 수 있었다. 얘기를 들어보니 에어컨에서 10초마다 드드득 거리는 소리 때문에 잠을 도저히 잘 수가 없었다고 했다. 심지어 한 친구는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서 새벽 4시 반에 밖을 나가 숙소 동네 한 바퀴를 돌았다고 했다. 친구는 조사를 아얘 안 해왔기 때문에 뭐가 뭔지는 잘 몰랐지만, 그래도 새벽에 스페인 공기를 마시니 이런 곳에서 잠을 자는 것보다 이게 더 유익했다고 말을 했다.
차라리 이런곳에서 오지도 않는 잠을 계속 청하는 것보단 빠르게 밖을 나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바로 씻고 나갔다. 숙소 앞에 있는 빵집에서 각자 아침 대용 빵을 하나씩 골라서 먹고 바로 구엘공원으로 향했다. 의외였던 것이 유럽은 약간 과거 지향적인 줄 알았는데 그냥 길목에도 에스컬레이터가 깔려 있어서 좀 놀랐다.
구엘공원에 도착하니 친구가 자기 새벽에 여기를 왔다고 했었다. 친구는 무료 존과 유료 존이 있는지 모르고 그냥 다 들어갔다고 했다. 신기하게도 관리인이 출근하기 전에 유료 존을 들어가면 공짜로 구경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친구도 새벽에 나갔으니 당연히 공짜로 봤는데 유료 존에 공사 중인 구간이 꽤 있어서 딱히 돈을 내고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 같다고 해 무료 존인 겉 부분만 돌기로 했다. 바르셀로나 엽서 같은 것을 보면 구엘공원 배경으로 나오는 곳이 유료 존이긴 하지만, 공원에 입장료를 지불하는 게 아직은 좀 돈이 아까운 것 같아서 그냥 무료존만 돌았다.
공원을 구경하던 중 되게 귀여운 장난감(?)을 만났다. 음악을 틀면 몸을 흔드는 종이인형이였는데, 혹해서 구매한 뒤 나중에 찾아보니 흔한 사기 중 하나라고 하더라... 심지어 우리나라에서도 판매하는 거라고 했다. 그나마 나는 5유로밖에 사지 않았는데, 내 친구는 10유로나 사서 좀 안타까웠다.
구엘 공원이 높다고 생각은 안했는데, 공원 산책 도중 전경을 보니 바르셀로나 시내가 한 번에 다 보였다. 그리고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작게나마 볼 수 있었다.
아무래도 무료 입장이다보니 버스킹을 하는 사람도 볼 수 있었다. 스페인 전통 춤인 '플라멩코'를 공연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옛날 김태희가 휴대폰 광고에서 빨간 드레스를 입으며 춤추는 장면이 있었는데 그런 플라멩코를 생각하며 무료 버스킹을 봤지만 아쉽게도 남자 혼자 공연하는 무대였다.
구엘 공원을 둘러보고 나오면서 아쉬움에 뒤를 돌아봤는데, 순간 그 풍경에 유료 입장존을 들어갈 뻔했다. 공원이 정말 돈을 받아도 될 정도로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괜히 이름을 날린 건축가가 아니구나 하면서 다시 한번 감탄했다.
구엘 공원을 돌고 나니 오후 1시쯤 되었다. 그래서 밥을 먹기 위해 음식점을 찾았다. 스페인은 여행하기 정말 좋다고 느꼈던 것중에 하나가 점심때 점심 코스로 파는 '메뉴 델 디아'가 있다. 우리나라로 치면 점심특선 같은 건데, 코스요리를 저렴한 가격으로 여러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거기다 무조건 인원수에 맞춰서 안 시켜도 되고 메뉴 델 디아 2개와 메인 메뉴 하나 이런 식으로 시킬 수 있어서 정말 많은 음식을 맛볼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가우디의 마지막 역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성당으로 향했다. 가우디가 건축 도중 사망해 아직까지 공사중이라고 하는 역작, 2026년 완공 예정이라고 하는데 그 전까진 공사 비용으로 입장료를 받고 있다고 했다. 애들과 들어갈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성당 내부보다 스테이크 한 번을 더 먹자는 결론이 나와 들어가진 못했지만, 나중에 완공이 되면 무료입장으로 전환할 예정이라고 하니 그때 다시 스페인을 가서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박 겉핥기 식으로 가우디의 수작을 본 뒤 바르셀로나의 해변가인 '바르셀로네타'를 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개선문과 그 뒤로 이어지는 스트리트가 뻥 뚫린 느낌이어서 스페인과 이미지가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에서 바르셀로네타까지는 걸어가기엔 먼 거리였지만, 그래도 날씨랑 풍경이 정말 좋아 한참을 걸어 바르셀로네타에 도착했다. 여름의 중간이여서 그런지 해변엔 정말 사람이 많았다. 이때까지는 수영도 못하고 물도 무서워해 아쉽게도 물놀이는 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바다 색이 정말 파란색이어서 해변을 감상하기만 해도 좋았다.
여름의 유럽은 정말 해가 늦게 졌다. 저녁을 먹으려고 밤 8시쯤 식당을 찾아 들어갔는데 아직도 해가 쨍쨍해 저녁이 아니라 점심을 먹는 느낌이였다. 스페인의 대표 음식인 빠에야를 먹기 위해 음식첨을 찾아갔는데 정말 소문대로 너무 맛있었다. 다른 메뉴는 사실 별로였지만, 빠에야 하나만으로도 올 이유는 충분했던 음식점이었다.
밥을 먹고 나오니 해가 지기 시작했다. 여름의 유럽은 이게 너무 단점인 것 같다. 야경을 보기 힘들다는 것... 그래도 해가 졌으니 바르셀로나의 여러 메인 중 하나인 '몬주익 분수쇼'를 보러 움직였다. 몬주익 분수쇼가 세계 3대 분수쇼 중에 하나로 들어간다는데, 전에 라스베가스를 보고 정말 감탄해서 기대를 많이 하고 갔다. 하지만 라스베가스가 너무 강렬했어서인지 기대 이하였다. 물의 힘이 너무 약하다고 해야 하나, 천둥소리 같은 물 폭죽이 없어서 좀 아쉬웠다.
재미도 없는 분수쇼를 앞에서 보니 물이 너무 많이 튀어 옷은 다 젖었다. 돌아가려고 고개를 돌렸는데, 오히려 뒤의 광장을 보고 놀랐다. 몬주익 분수가 유명한 이유는 분수보다도 아마 이 베네치안 탑이 있는 광장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마침 분수쇼도 끝이 났고 광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 중간에 버스킹을 하고 있었는데, 전자 바이올린으로 연주하시는 분이 정말 감명 깊었다. 가수 시아의 샹들리에를 연주하는데, 정말 몸에 전율이 흘렀다. 느낌이 꼭 미국 LA의 산타모니카 해변에서 버스킹을 봤을 때와 매우 흡사했다. 정말 감동적이어서 잊혀지지 않았던 버스킹 중 하나.
왠지 몬주익 분수 쇼보다 버스킹을 더 오래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차피 숙소에 돌아가면 분명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해 기분이 잡칠 것 같아 공연을 끝까지 봤다. 정말 숙소 빼고 모든 게 완벽한 바르셀로나의 1일 차였다. 그런데 숙소가 여행에서 이렇게 비중이 높을 줄이나 알았을까. 정말 최악과 최고의 완벽한 밸런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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