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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스위스에서 삼겹살을

by 메르쿠리오 2020. 6. 10.

유럽 여행 - 20일 차 ; 스위스

 

 체르마트에서 인터라켄으로 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나갔다. 아무래도 오늘 날씨를 보니 1박을 더 했다면 더 큰 지출이 있지 않았을까 했다. 날이 맑으면 마을에서도 작게나마 '마테호른'을 볼 수 있다는데, 11월에선 가능하지 않는 얘긴가 보다. 비수기는 이유가 다 있는 것 같았다.

건물 뒤에 산을 보면 안개로 자욱하다. 아마 어제보다 더 날씨가 안좋다고 생각된다.

 기차를 타고 체르마트를 벗어나니 귀신같이 날이 맑아졌다. 애초에 마테호른을 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들 많이 얘기하긴 했었다. 혼자 그렇게 자기 위안을 하면서 인터라켄에 도착했다. 다행히 체르마트를 제외하고는 유레일패스 사용이 어느 정도 가능해 표값을 아낄 수 있었다. 

내가 생각한 스위스의 이미지와 가장 잘 맞았던 것 같은 배경. 평화롭고 아기자기한 마을이다.

 숙소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갔는데, 저렴한 호스텔임에도 불구하고 뷰가 괜찮았다. 창문을 열어 밖을 봤는데, 바람도 안 불고 구름도 많이 걷혀서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패러글라이딩 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스위스의 하늘을 느껴보고 싶었다. 그래서 좀 있다 밖에 나갈 때 액티비티를 좀 찾아보기로 했다.

호스텔에서 보이는 창밖 뷰. 이정도만으로도 매우 만족했다. 오른 쪽 사진에서는 하늘에 점처럼 보이는 것이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모습이다.

 액티비티를 알아보기 전에, 날씨가 너무 좋아서 일단 걷기로 했다. 오늘보다 어제 날씨가 더 좋았으면 좋으려만, 하지만 인터라켄의 맑은 날씨를 보는 것도 매우 아름다웠다. 정말 교과서에 나올법한 전형적인 동화마을 같았다. 운하를 건너고 주위에 산들을 보자니 유럽의 많은 곳들은 디즈니가 영감을 많이 받았겠구나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춥지만 않았더라면 벤치에 앉아 책 한권 읽고 싶었던 날씨였다.

 작게 언덕을 올라갈 수 있는 곳이 있길래 올라가 봤다. 중간에 철장이 쳐져 있었는데, 그 안으로 보니 산양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언덕 위에서 인터라켄을 바라보니, 생각보다는 현대적인 마을처럼 보였다. 

언덕에서 뛰놀고 있는 산양들과 언덕에서 바라본 인터라켄. 뒤에 보이는 산과 조화가 정말 좋았다.

 어느 정도 구경한 다음 액티비티를 알아보러 갔다. 그런데 두 가지 큰 문제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가격이 정말 말도 안 되게 비쌌고 두 번째는 오늘은 날씨가 좋았지만 내일은 강풍이 예상되어 애초에 예약을 안 받아 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시내 구경을 좀 더 했다.

구경을 하다가 저녁은 만들어 먹을 생각으로 마트를 갔다. 스위스의 물가를 고려해서 그런지 내 숙소를 포함한 대부분 숙소가 다 취사를 지원했다. 마트에 갔는데 신기하게도 스위스에는 삼겹살을 팔았다. 알고 보니 스위스에 한국사람이 정말 많이 관광을 하러 와 삼겹살을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신기하기도 하고 뭔가 고향의 맛을 느끼고 싶어 충동적으로 삼겹살을 구매했다. 귤도 엄청 저렴해 한 망을 사서 숙소로 돌아갔다. 도미토리에 외국인 친구가 들어와 있길래 인사를 하고 귤을 까먹고 있었다. 근데 그 친구가 노트북으로 롤을 하고 있었다. '얘는 왜 스위스까지 와서 롤을 하지'란 생각을 했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까 옆에서 롤을 구경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숙소에서 노닥거리다 보니 벌써 저녁이 되었다. 그래서 아까 사 온 삼겹살을 들고 키친으로 갔는데, 생각해보니 여기는 가위도 쌈장도 상추도 밥도 마늘도 아무것도 없었다. 그걸 심지어 굽기 시작하고 알았다. 그래서 어떡하지라는 고민만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국분들이 키친으로 들어왔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말을 걸어 한국분이냐고, 괜찮으면 내 삼겹살을 셰어 하는 대신 같이 먹을 수 있냐고 물었다. 근데 정말 다행히도 그 한국분이 오케이 했다.

 밥을 같이 먹으면서 얘기를 했는데, 그분은 파리에서 1년간 워킹홀리데이를 끝내고 유럽 한 바퀴를 돈 다음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근데 마침 또 한식밖에 못 드신다고 해서 밥과 김치까지 들고 다니셨다. 삼겹살은 스테이크처럼 칼로 썰었지만 먹는데 전혀 문제 될 건 없었다.

타지에서 구워먹는 삼겹살이란... 스위스에 가게 된다면 쌈장은 꼭 챙기도록 하자.

 덕분에 든든하게 한식을 먹을 수 있어서 감사 인사를 표했다. 그분들도 내일까지 여기에 머문다고 해 내일도 같이 저녁을 먹기로 약속하고 쉬러 돌아갔다. 

 


이 블로그에 있는 모든 사진은 제가 직접 여행지 가서 찍은 것입니다. 사진을 이용하시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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