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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영화관에서만 봐왔던 그 산

by 메르쿠리오 2020. 6. 8.

유럽 여행 - 19일 차 ; 스위스

 

 3인실로 업그레이드해도 좌석 자체가 불편하니 꿀잠을 자면서 갈 수는 없었나 보다. 중간중간 덜컥거려서 깼더니 새벽 5시 반쯤 되었다. 휴대폰을 좀 하다 보니 날이 밝아지는 게 보였다. 스위스로 가는 야간열차는 아침을 줬다. 크루아상이랑 따듯한 티를 받았는데, 그냥 크루아상인줄 알았는데 안에 초콜렛이 들어 있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창밖을 봤는데 여기가 스위스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는 배경이었다.

아침으로 먹은 크로아상과 레몬티. 스위스의 풍경을 보며 유럽식 조식을 먹으니 아침 일찍일어나도 상쾌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환전부터 했다. 여기도 동유럽은 아니지만 동유럽처럼 자기 나라의 화폐(프랑)를 쓰고 있었다. 유로랑 거의 환율 차이는 안 나고 수수료만 빼고 바꿔줬다. 환전을 하니 아저씨가 기념품으로 가져가라고 1프랑을 더 줬다.

 내가 계획한 일정대로라면 오늘 바로 체르마트로 넘어가야 했다. 체르마트는 유레일패스가 되지 않아 따로 표를 구매했는데, 편도로 구매했는데도 5만 원이 넘었다. 스위스에 도착한 지 한 시간 만에 스위스의 살인적인 물가를 느낄 수 있었다.  동유럽이 보통 서유럽보다 겨울이 빨리 와서 눈이 없는 줄 알았지만, 대자연의 스위스는 확실히 달랐다. 체르마트행 열차를 타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눈으로 뒤덮인 산을 볼 수 있었다. 스키를 제대로 탈 줄 알았다면 스키도 한 번쯤은 타보고 싶은 비주얼이었다. 

체르마트 가는 길에 보이는 눈으로 뒤덮힌 마을.

 체르마트에 도착해서 숙소에 가 짐을 바로 풀고, 오늘 '마테호른'에 올라간다는 사람과 연락을 해 보았다. 그분들은 이미 마테호른이 있는 '고르너그라트'에 올라가 있다고 했는데,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 올라오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오늘밖에 기회가 없는데, 비추천에도 불구하고 그냥 올라갔다. 그 당시 고르너그라트의 기차 왕복은 한화 약 14만 원... 정말 칼만 안 들었지 스위스는 강도의 나라가 틀림이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티켓을 구매한 다음, 올라갔다. 한국사람이 많이 온다고는 들었지만 한국어로 방송까지 해주는 걸 보고 조금 신기했다. 중반 부분부터 슬슬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왜 비추천하는지... 이 정도면 눈보라를 넘어 블리자드 수준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바람이 불었다.

 드디어 정상으로 도착했다. 유럽 내내 날씨운이 좋은 적이 별로 없어서 스위스에서만큼은 좋길 바랬는데, 아직 마일리지가 다 안 쌓였나 보다. 3천 미터가 넘는 곳에 있으니 체감상 마을에 있을 때 보다 10도는 더 떨어진 것 같았다. 너무 추웠지만 체르마트의 심볼인 '마테호른'을 꼭 보고 싶어서 밖에서 벌벌 떨며 기다렸다. 하지만 눈보라가 단 1초도 걷히지 않아 3시간을 넘게 기다리다가 포기했다.

고르너그라트 정상에서 볼 수 있는 3천미터의 푯말과 호텔 겸 카페. 건물 뒤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돈생각밖에 나지 않았다...

 너무 추워서 카페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음료를 시켰다. 정상에서 만난 동행분들과 얘기해보니, 그분들은 내가 올라오기 한 시간 전부터 밖에서 기다렸지만 자기들도 결국 못 봤다고 했다. 맘 같아선 하루 더 있어서 '마테호른'을 반드시 보고 싶었지만, 스위스의 다른 대자연들도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접었다.

 몸을 좀 녹이고 난 뒤, 아쉬운 마음에 그냥 눈보라 위에서 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 싶어 보이지 않는 마테호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거의 컴퓨터 합성 수준으로 뒤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14만원짜리 인증샷.......

 혹한기 훈련을 끝내고 마을로 돌아갔다. 지나가는 길에 한국어로 된 김밥집을 봤다. 근데 김밥이 무슨 2만 5천 원이나 했다. 안에 금을 넣어놨는지... 도저히 여기선 레스토랑도 갈 자신이 없어서 마트에 들러 빵을 사 먹었다. 오후에 뻘짓을 해서 그런지 마트에 들려 숙소에 들어갈 때쯤부터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산이라 그런지 해가 더 빨리 지는 것 같았다.

 여기 숙소를 예약할 때 직원이 샤워를 할 때 물을 마셔도 될 정도로 스위스의 수질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정말 샤워하면서 물을 마셔봤는데, 괜찮았던 것 같다. 사실 좀 오래돼서 기억은 잘 안 난다.(마셨던 것은 확실했다.) 샤워하고 뒹굴뒹굴 거리다 너무 심심해 시계를 보니 밤 8시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시내 구경이나 할 겸 나갔는데, 정말 시내로 갈 때까지 빛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한 채 시내까지 나갔다. 시내에 딱 한 곳에 펍이 있었는데, 체르마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분명 가게 분위기는 펍인데도 불구하고 클럽처럼 노래도 크게 틀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가게 분위기를 대충 보다가 돈 생각을 하며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숙소에서 한 15분쯤 걸어야 빛이 보이기 시작했던 체르마트의 시내. 시내도 이 구간을 제외하면 다 문을 닫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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