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 - 19일 차 ; 스위스
3인실로 업그레이드해도 좌석 자체가 불편하니 꿀잠을 자면서 갈 수는 없었나 보다. 중간중간 덜컥거려서 깼더니 새벽 5시 반쯤 되었다. 휴대폰을 좀 하다 보니 날이 밝아지는 게 보였다. 스위스로 가는 야간열차는 아침을 줬다. 크루아상이랑 따듯한 티를 받았는데, 그냥 크루아상인줄 알았는데 안에 초콜렛이 들어 있었다. 아침을 먹으면서 창밖을 봤는데 여기가 스위스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는 배경이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환전부터 했다. 여기도 동유럽은 아니지만 동유럽처럼 자기 나라의 화폐(프랑)를 쓰고 있었다. 유로랑 거의 환율 차이는 안 나고 수수료만 빼고 바꿔줬다. 환전을 하니 아저씨가 기념품으로 가져가라고 1프랑을 더 줬다.
내가 계획한 일정대로라면 오늘 바로 체르마트로 넘어가야 했다. 체르마트는 유레일패스가 되지 않아 따로 표를 구매했는데, 편도로 구매했는데도 5만 원이 넘었다. 스위스에 도착한 지 한 시간 만에 스위스의 살인적인 물가를 느낄 수 있었다. 동유럽이 보통 서유럽보다 겨울이 빨리 와서 눈이 없는 줄 알았지만, 대자연의 스위스는 확실히 달랐다. 체르마트행 열차를 타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눈으로 뒤덮인 산을 볼 수 있었다. 스키를 제대로 탈 줄 알았다면 스키도 한 번쯤은 타보고 싶은 비주얼이었다.
체르마트에 도착해서 숙소에 가 짐을 바로 풀고, 오늘 '마테호른'에 올라간다는 사람과 연락을 해 보았다. 그분들은 이미 마테호른이 있는 '고르너그라트'에 올라가 있다고 했는데, 오늘 날씨가 좋지 않아 올라오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오늘밖에 기회가 없는데, 비추천에도 불구하고 그냥 올라갔다. 그 당시 고르너그라트의 기차 왕복은 한화 약 14만 원... 정말 칼만 안 들었지 스위스는 강도의 나라가 틀림이 없었다. 눈물을 머금고 티켓을 구매한 다음, 올라갔다. 한국사람이 많이 온다고는 들었지만 한국어로 방송까지 해주는 걸 보고 조금 신기했다. 중반 부분부터 슬슬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 사람들이 왜 비추천하는지... 이 정도면 눈보라를 넘어 블리자드 수준이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바람이 불었다.
드디어 정상으로 도착했다. 유럽 내내 날씨운이 좋은 적이 별로 없어서 스위스에서만큼은 좋길 바랬는데, 아직 마일리지가 다 안 쌓였나 보다. 3천 미터가 넘는 곳에 있으니 체감상 마을에 있을 때 보다 10도는 더 떨어진 것 같았다. 너무 추웠지만 체르마트의 심볼인 '마테호른'을 꼭 보고 싶어서 밖에서 벌벌 떨며 기다렸다. 하지만 눈보라가 단 1초도 걷히지 않아 3시간을 넘게 기다리다가 포기했다.
너무 추워서 카페 안으로 들어가 따뜻한 음료를 시켰다. 정상에서 만난 동행분들과 얘기해보니, 그분들은 내가 올라오기 한 시간 전부터 밖에서 기다렸지만 자기들도 결국 못 봤다고 했다. 맘 같아선 하루 더 있어서 '마테호른'을 반드시 보고 싶었지만, 스위스의 다른 대자연들도 있었기 때문에 마음을 접었다.
몸을 좀 녹이고 난 뒤, 아쉬운 마음에 그냥 눈보라 위에서 사진이라도 찍어야겠다 싶어 보이지 않는 마테호른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혹한기 훈련을 끝내고 마을로 돌아갔다. 지나가는 길에 한국어로 된 김밥집을 봤다. 근데 김밥이 무슨 2만 5천 원이나 했다. 안에 금을 넣어놨는지... 도저히 여기선 레스토랑도 갈 자신이 없어서 마트에 들러 빵을 사 먹었다. 오후에 뻘짓을 해서 그런지 마트에 들려 숙소에 들어갈 때쯤부터 깜깜해지기 시작했다. 산이라 그런지 해가 더 빨리 지는 것 같았다.
여기 숙소를 예약할 때 직원이 샤워를 할 때 물을 마셔도 될 정도로 스위스의 수질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정말 샤워하면서 물을 마셔봤는데, 괜찮았던 것 같다. 사실 좀 오래돼서 기억은 잘 안 난다.(마셨던 것은 확실했다.) 샤워하고 뒹굴뒹굴 거리다 너무 심심해 시계를 보니 밤 8시밖에 되지 않았었다. 그래서 시내 구경이나 할 겸 나갔는데, 정말 시내로 갈 때까지 빛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휴대폰 불빛에 의지한 채 시내까지 나갔다. 시내에 딱 한 곳에 펍이 있었는데, 체르마트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다 모인 것 같았다. 분명 가게 분위기는 펍인데도 불구하고 클럽처럼 노래도 크게 틀고 사람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가게 분위기를 대충 보다가 돈 생각을 하며 다시 숙소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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