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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한국사람들은 서로를 알아보는법

by 메르쿠리오 2020. 5. 26.

유럽 여행 - 13일 차 ; 오스트리아

 

 뮌헨에서 숙박을 잡았지만 제대로 여행은 하지 못한 채 뮌헨을 떠나 오스트리아의 '잘츠부르크'로 가는 기차를 타러 갔다. 4일 동안 하루에 한 번씩 기차를 타니 벌써 60만 원짜리 유레일패스 뽕은 다 뽑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잘츠부르크'에서 내가 유일하게 아는 것은 옛날 영화인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여러 번 보기도 했고, 워낙 유명한 영화여서 기억에 많이 남는 영화 중 하나인데 그 영화의 배경이 '잘츠부르크'라고 했다. 사실 오스트리아는 '사운드 오브 뮤직'이 있다고 해도 큰 관심은 없었지만,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를 가려면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나라였기 때문에 편의를 위해 2박을 하기로 했다. 

 잘츠부르크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려고 리셉션으로 갔는데 리셉션에 동양 분이 앉아계셨다. 나는 저사람이 한국인이라는 확신이 없었는데, 그쪽에서 먼저 나를 보더니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넸다. 놀람과 동시에 당황해서 '어, 대박 안녕하세요'라는 말과 함께 체크인을 진행했다. 

 호스텔에서 일하시는 한국분은 유학생이였는데 돈이 필요해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고 했다. 시간도 남아 체크인을 한 후에 짐을 방에 놔두고 그분이랑 짧게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이 숙소는 특이한 점이 매일 정해진 시간마다 숙소에서 사운드 오브 뮤직을 틀어주는 것이라고도 알려줬다.

 얘기를 마치고 나와 밥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확실히 음악의 도시다 보니 뭔가 이전에 본 도시보다 좀 더 느낌이 있었다. 길 곳곳에서 모차르트의 음악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날도 어김없이 흐렸으나, 잔잔한 도시의 느낌과 잘 어울렸다.

 딱히 눈에 띄는 레스토랑이 없어서 그냥 아무 데나 들어가기로 했다. 거기서 '피쉬 앤 칩스'를 팔았는데, 영국 가기 전에 미리 예행연습한다는 느낌으로 하나 시켜서 먹었다. 영국은 나중에 나오겠지만, 영국보다 이곳이 훨씬 저렴하고 맛있었다. 양이 적당해 느끼할 때쯤 음식을 다 먹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 음식점도 '레겐스부르크'때 처럼 약간 간이식당같은 느낌이 강했지만 맛은 정말 괜찮았던 것 같다.

 밥을 다 먹고 나가서 여기저기 걸었다. 긴 터널도 통과하고 폐 성당들도 지나갔다. 어느 순간 걸어가다 보니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이였다. 올라가서 루프탑이나 보자는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그래도 아까는 비가 왔지만 언덕을 올라갈 때부터 비는 그쳤으나 해는 볼 수 없었다.

'잘츠부르크'를 가로지르는 강과 언덕 중간중간에 보이는 작은 성당들.

 아래서 볼 땐 몰랐는데, 잘츠부르크의 지붕 색은 칙칙한 색이었다. 흐린 날씨에 칙칙한 지붕 색까지 더하니 안 좋은 쪽으로 시너지가 발휘되는 느낌이었다. 거기다 산책하는 사람들도 별로 보이지 않아 사람 보는 재미도 없어서 심심했다. 꽤 높은 곳까지 와서 멀리 전경을 보는데, 저 옆에 또 다른 언덕과 그 위에 요새 같은 것이 보였다. 그래서 아직 두 다리는 멀쩡하니 내친김에 저 언덕까지 가보기로 했다. 

칙칙해 보이는 지붕들과 우측 언덕에 희미하게 보이는 이름모를 요새. 꽤 멀어보였지만 저기까지 다시 걸어가기로 했다.

 그래도 지금 있던 곳에서 저 언덕까지 가는 길이 있어서 다시 내려갔다 올라가는 수고는 덜했다. 내가 있었던 언덕과는 다르게 저 요새가 있는 곳은 그래도 유명한 곳이었나 보다. 요새로 가니 사람들이 슬슬 보이기 시작했고 요새를 투어 할 수 있는 시스템도 마련된 것 같았다.

요새로 가는길에 보이는 사람들과 요새 내부. 대충봐도 5~6세기 전의 느낌이 났다.

 슬슬 휴대폰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아 주변 카페를 찾으려고 했지만 너무 오래된 요새를 지키려고 했는지 요새 주변 카페는 찾을 수 없었다. 혹시나 해서 인포메이션을 들어갔는데, 콘센트를 꽂는 곳이 있었다. 그래서 많이 민망하지만 바닥에 앉아 휴대폰 어댑터를 연결한 후 거진 30분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멍 때리고 있었다. 다행히 거기서 일하고 있던 직원들은 별 말을 하지 않아서 어느 정도 충전하고 난 뒤에 바로 나갔다.

 나가서 무료로 개방된 곳들은 여기저기 다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에서 '한국분 맞으시죠?!'라는 소리가 들려서 뒤를 돌아봤다. '괜찮으시면 사진 좀 부탁드릴게요...'라는 말과 함께 어쩌다 보니 같이 다니게 되었다. 그분은 독일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었는데, 한국에 돌아가기 전 유럽을 한 바퀴 도는 중이라고 했다. 그분도 어느 정도 이 요새를 돈 상태여서, 가장 높은 곳에서 전망을 다 본 뒤에 슬슬 내려가기로 했다. 내려가는 길에 보니 그 높았던 언덕을 왔다 갔다 하는 케이블카가 있었다. 심지어 무료여서 단 1초의 고민도 없이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기로 했다.

케이블카가 사방이 유리로 되어있어 보는 재미도 있었다.

 내려와서 슬슬 밥 먹을 시간이 돼 거리에 서서 검색을 하고 있는데, 저기 한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혼자서 다니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한국분이냐고 물어봤더니 역시나였다. 그분도 딱히 스케쥴이 있던 게 아니었고 밥도 안 드셨다고 하길래 같이 조인하게 됐다. 

 찾은 식당은 오스트리아의 가정식을 파는 레스토랑이었다. 우리가 시킨 메뉴 중 2개는 오스트리아의 대표음식인 '굴라쉬'와 '슈니첼'이 있었다.(하나는 그냥 고기 같아서 시켰다.) 슈니첼은 쉽게 생각하면 돈가스 같은 건데, 신기하게도 돈가스 소스가 아닌 잼(블루베리나 딸기 같은)에 찍어먹는 요리였다. 그리고 굴라쉬는 큰 고기들이 들어간 수프인데, 슈니첼은 괜찮았으나 이상하게 굴라쉬에서는 군대에서 먹은 '해물 비빔소스' 맛이 나서 먹는데 약간의 거부감이 있었다.

중간에 있는 요리가 '굴라쉬', 우측 메뉴가 '슈니첼'이다. 전체적으로 맛은 괜찮았으나 이상하게 군대를 떠오르게 하는 그 맛의 정체는 뭐였을까.

 다 먹고 난 뒤 담소나 더 나눌 겸 다음 장소를 물색하고 있는데, 마지막에 합류했던 분 지인들이 지금 술집을 가려고 하는데 같이 갈 거냐고 물었다. 나야 뭐 술이면 무조건 OK라 거절하지 않았고, 중간에 만났던 분도 승낙해 술집으로 장소를 옮겼다. 

 가는 길에 같이 만나서 술집으로 이동했는데, 알고 보니 여기가 오스트리아의 '호프브로이'였다. 예전 수도원을 개조해 호프집으로 만들었는데, 분위기부터 장난 아니었다. 거기다 잘츠부르크 모든 사람이 여기 다 모였는지, 앉아서 먹는 자리는 다 차서 서서 먹는 자리밖에 남지 않았다.

 술을 주문하는 방식도 매우 특이했다. 빈 맥주잔이 곳곳에 있고 중앙에 분수같이 맥주잔을 씻을 수 있는 곳이 있다. 거기에 맥주잔을 헹군 후 오크통을 관리하는 아저씨한테 가면 오크통에서 바로 나오는 생맥주를 먹을 수 있었다. 거기다 맥주잔의 크기에 따라 가격을 매겨 매우 신기한 시스템이었다.

자기가 원하는 사이즈의 맥주잔을 들고 가면 오크통에서 맥주를 받아준 뒤 돈을 받는다. 이 경험 하나만으로도 올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맥주 맛도 장난 아니었다. 호프브로이랑 비빌 수준으로 맥주 맛이 매우 훌륭했다. 개인적으로 잘츠부르크에 간다면 아마 이 수도원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일어서서 먹는 테이블밖에 남지 않아, 오래 있지는 못했다. 다들 한 시간 정도 지나니 슬슬 다리들이 아파와 한 2잔 정도 맥주를 마시고 난 뒤 결국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수도원의 규모가 엄청 커 맥주와 안주를 따로 팔았다. 그리고 자리가 없어서 서서 먹는사람들도 꽤 보였다.

 가는 길에 내일 스케쥴들을 물어봤는데, 다행히 내 스케쥴과 겹치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그래서 내일 아침 일찍 잘츠부르크 역 앞에서 다시 만나기로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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