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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마지막날 만난 사기꾼

by 메르쿠리오 2021. 3. 26.

중남미 여행 - 11일 차 ; 페루

 

 쿠스코, 아니 페루의 마지막 날이 왔다. 쿠스코에서 정신없이 달리다 보니 도시 구경도 제대로 못하고 지나갈 것 같아 마지막 날은 여유롭게 도시 투어를 하기로 했다. 하루도 아끼지 않고 투어를 할 생각으로 오늘 '우만따이 호수'를 갈까 생각했지만, 야간 버스를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극심한 피로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버스 터미널까지 구글맵상으론 그리 멀지 않다고 느꼈는데 막상 걸어서 가보니 정말 오래걸었다. 그래도 쿠스코 시내인 윗동네의 반대편인 아랫동네도 날씨 덕인지 되게 멋있었다. 지나가는 상점에선 코카 캔디도 보았다. 우리나라에 가져가면 이것도 불법일까?

저 동상은 아르마스 광장에서도 본 것 같은데, 꽤나 유명하신 분인가 보다. 코카 캔디는 과연 마약으로 봐야할까 궁금했다.

 오늘 밤 볼리비아로 넘어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다시 돌고 돌아 시내인 '아르마스 광장'으로 갔다. 마지막이라는걸 아는지 환상적인 날씨를 보여준 쿠스코는 과거의 영광인 잉카문명을 제대로 보여주는 듯했다. 고산지대이지만 여기는 지금 여름이기 때문에 일교차가 엄청 커 낮에는 되게 더웠다. 더운 날씨 덕에 옆에 있던 소프트콘 가게의 유혹에 빠져 하나 구매해 천천히 쿠스코 시내를 구경했다.

항상 엄청난 구름으로 가려져 있던 해가 오늘은 활짝 피었다. 덕분에 너무 더워 아이스크림을 그냥 지나칠 순 없었다.

 조금 걷다보니 벌써 점심시간이 되었다. 좀 있다 리마에서 만난 동행을 만나기로 해 가볍게 점심을 먹기 위해 이뻐 보이는 아무 카페나 찾아갔다. 비주얼에 끌려 들어갔는데 비건 카페였다. 오랜만에 비건식을 먹자고 생각해 점심을 때웠는데, 맛은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비건식이다 보니 정말 금방 다시 배가 고파졌다.

카페 가는 골목부터 음식 플레이팅, 맛 다 괜찮았지만 비건식은 배가 너무빨리꺼지는게 가장 아쉬웠다.

 동행을 만나서 어디 갈 거냐고 물어보니 쿠스코의 예수상에 갈 거라고 말해줬다. 쿠스코의 예수상은 시내에서도 더 더 위로 올라가야 볼 수 있는데, 예수상뿐만이 아니라 유적지인 삭사이와만, 달의 신전 등등 여러 곳들이 있어 묶어서 투어를 진행하는 것 같았다. 중간까진 어찌저찌 올라갔는데, 더 이상은 무리일 것 같다고 판단해 일단은 여기서 쉬었다 택시를 타고 올라가기로 했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고산지대의 가장 큰 매력은 구름이 정말 가까이서 보인다는 점이다.

 한 택시기사가 무슨 대학생 연합 같은걸 꾸리고 있다고 대학생이면 택시를 타고 갈 때 삭사이와만과 다른 곳들의 입장료를 받지 않고 공짜로 투어 할 수 있다고 얘기했다. 삭사이와만의 입장료를 검색해보니 무려 80 솔이나 했다. 그런데 택시로는 둘이서 총 20 솔만 내면 공짜로 입장이 가능하다고 해 혹해서 택시를 타고 갔다. 달의 신전이 제일 위에 있어서 위에서부터 아래로 천천히 구경하려고 그쪽에서 내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이 친구가 도착하니 갑자기 말을 바꿨다. 택시비는 무려 인당 50 솔씩 내라는 것이다. 실랑이를 하다가 어떻게 말을 잘해서 우리는 학생이고 쿠스코도 마지막 날이라는 식으로 둘러대 인당 20 솔씩만 내고 내렸다. 페루 마지막 날엔 사기까지 당하다니... 분하지만 제대로 찾아보지 않고 간 우리 잘못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갔다.

 사실 달의 신전이라고 해 화려한 곳을 생각하고 왔는데 배경지식이 없으니 이 허허벌판 중 어떤 게 달의 신전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때 한 페루인이 봉사활동 중이라고 하며 우리에게 가이드를 해주겠다고 왔다. 이미 사기를 당하고 온 터라 경계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사기꾼은 아니었지만 달의 신전 설명이 끝난 후 가이드 비용을 줄 수 있냐고 물었다. 필수로 줄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설명을 정말 열심히 해줘서 안 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작게 5 솔만 주고 천천히 예수상까지 내려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작게 보이는 쿠스코의 시내와 유칼립투스 숲을 보니 기분이 좀 나아졌다.

달의 계곡은 그 자체보단 가는 길이 이뻐서 그나마 좋았다. 달의 계곡은 밤에 와야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예수상이 목적이라면 지금 생각해보니 걸어가도 충분할 것 같았다. 택시를 타도 삭사이와만까지 가는 게 아니라면 충분히 사기를 먹진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천천히 걸어가다 보니 어느새 예수상에 도착했다. 나는 종교를 믿지 않지만, 유럽에서도 그렇듯이 믿음을 부정하진 않는다. 믿음으로 인해 이런 멋진 조각상까지 만들 수 있었기에... 종교인들 덕분에 쿠스코에 좋은 관광명소가 또 하나 만들어질 수 있었다.

종교는 없지만 예수상이 보일때마다 항상 자세를 따라하는 나.

 투어를 한 것도 아닌데 오랫동안 걸어 다니니 배가 고파(어쩌면 점심을 비건식으로 먹어서) 슬슬 내려가기로 했다. 동행분이 오늘 고생했다면서 한식을 사주겠다고 했다. 쿠스코 한식집에 갔는데 아직 오픈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래도 아주머니가 기다리고 있는 우리를 보더니 들어오라고 해 다행히 첫 손님으로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김치찌개와 제육볶음을 먹었는데, 정말 세상 이거보다 맛있는 음식이 있을까 싶었다. 사실 타지에 가면 웬만하면 타지 음식만 먹자는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국사람은 한국사람인지라 한식을 한입 맛보더니 거의 눈이 돌아가 정말 미친 듯이 먹었다. 가끔씩은 타지에서 한식을 찾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밥을 두공기를 먹을 정도로 정말 맛있었다. 11일만에 첫 한식이라니, 그 이후로도 한식이 계속 생각났다.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쿠스코의 마지막을 담기 위해 아까 낮에 갔던 전망대에 다시 가기로 했다. 걸어 올라갈 생각이었는데 막상 밤이 돼서 보니 꽤나 위험할 것 같았다. 근데 거기서 지나가던 들개가 우리를 보더니 마치 가이드인 것처럼 앞장서서 나섰다. 우리가 오는지 안 오는지 몇 번이고 뒤돌아보면서 목적지까지 안내해줬다. 원래 개를 정말 무서워하는데 처음으로 개한테 사람 이상의 감정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때 처음으로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 처음봤을텐데 내가 만져도 가만히 있는게 얼마나 귀엽던지.

아름다운 쿠스코의 배경에 홀려 사진을 찍고 있으면 일일 가이드인 강아지님은 우리를 기다려주기까지 했다.

 동행과 개, 나 셋이서 같이 쿠스코의 마지막 밤을 지켜봤다. 우리가 갈 때까지 강아지는 우리 곁을 떠나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먹을 거라도 가져와 개한테 좀 나눠줄걸... 정말 미안한 마음만 들었다.

들개인데 어쩜 이렇게 얌전하고 사람을 좋아할까, 한국이였으면 정말 데려다 키우고 싶었다. 

 동행분이랑 인사를 한 뒤 숙소에서 짐을 챙겨 버스 터미널로 갔다. 다음 나라이자, 세계에서 가장 높은 호수가 있는 볼리비아의 코파카바나로 떠날 준비를 하며.

페루의 매력을 전부 담기엔 11일로는 택도 없이 부족했다. 남미의 첫 나라이면서도 정말 강렬한 인상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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