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여행 - 13일 차 ; 볼리비아
어제 일찍 자서 그런지 아침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숙소 창밖을 통해 봤는데 언제나 그랬듯이 코파카바나는 평화로웠다. 비건식 아침을 먹고 라파즈로 떠나기 전 유심을 먼저 사기로 했다.
코파카바나는 버스 터미널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시내에 가보면 버스가 모여있는 곳이 있었다. 거기서 '라파즈 라파즈'라고 외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분들한테 돈을 주고 버스를 타면 됐다. 시간도 딱히 정해진 게 아니고 그냥 손님이 다 모이면 출발하는 것 같다. 탑승한 지 한 20분쯤 지났을 때 내가 탄 버스는 출발했다.
보통 남미 버스는 노선이 다 길어서 당연히 버스 내부에 화장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이 노선은 없는 건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옆사람에게 화장실을 언제 갈 수 있냐고 하니까 자기도 모른단다. 점점 급해져 왔는데 다행히 휴게소 같은 곳에 도착했다. 여기서 잠시 정차하길래 나는 버스기사한테 화장실을 갔다 오겠다고 한 뒤 바로 화장실로 직행했다. 유료여서 돈을 내고 화장실을 갔다 왔는데 글쎄, 내 버스가 사라져 있었다. 분명 기사한테도 말했는데 설마 버리고 간 걸까, 머릿속이 하얘지기 시작했다. 식은땀이 줄줄 난 상태에서 이리저리 둘러보는데 한 버스가 터미널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그래서 전력질주로 뛰어 버스를 잡았는데 당연히 내가 탄 버스가 아니었다. 버스기사한테 내 버스가 사라졌다고 얘기하니 자기도 잘 모르겠다고 하며 광장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래서 광장으로 다시 가보니 저 멀리 한 버스가 배를 건너가고 있는 게 보였다. 그냥 직감적으로 내 버스가 저 버스다 생각하고 강을 건너기 시작한 배에 점프했다. 거기엔 한 유럽인 가족이 있었는데 얘네가 어리둥절해하며 나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정말 미안하다고 한 뒤 저 앞에 보이는 버스에게 기다려달라고 계속 소리쳤다. 그런데 버스가 선착장에 내리자마자 바로 또 출발을 해버렸다. 저기에 내 배낭이 있었기에 저걸 놓치면 끝이다고 생각하며 나도 선착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가 보일 때까지 계속해서 뛰었다. 다행히 버스는 얼마 가지 않아 정차해 있었다. 알고 보니 강을 건넌 후에 약간의 휴식시간을 주고 다시 출발하는 거였다. 아무런 정보 없이 가다 보니 코파카바나에서 라파즈로 갈 때 강을 건너는 것도 몰랐고, 강을 건넌 이후에 화장실을 갔었어야 했는데 너무 성급했다. 어차피 스페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해 기사분이 말했어도 못 알아들었겠지... 정말 정보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버스를 잡기 위해 뛰어다닐 수 있는 걸 보니 고산 걱정은 이제 안 해도 될 것 같았다.
긴장이 풀리니 잠이 쏟아졌다. 한참을 자다 깨니 도시에 들어온듯했다. 신기하게도 영상 9도인데 눈이 녹지 않고 쌓여있었다. 하도 고산지대여서 그런지 여름인데도 그렇게 덥진 않았다. 하지만 기온이 영상인데 만년설처럼 눈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라파즈는 내가 본 곳 중에 교통체증이 가장 심했다. 라파즈에 들어오자마자 정말 차가 앞으로 가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어쩐지 구글맵상으론 코파카바나와 라파즈가 그렇게 먼 구간처럼 보이지 않았는데 왜 4시간 반, 5시간씩 걸리는지 알 수 있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라파즈에 있다는 달의 계곡을 가기 위해 남미 단톡방을 이용했다. 다행히 오늘 간다는 사람이 있어 총 3명이서 한 박물관 앞에서 만나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여기서도 또 한 번 정보를 놓쳤다고 생각하는 게, 콜렉티보를 이용하면 달의 계곡까지 한화로 500원도 안 되는 비용으로 갈 수 있는데 택시는 왕복에 택시기사 대기비용까지 포함해 한화로 약 2만 원 정도를 지불해야 했다. 이것 또한 제대로 찾아보지 않고 간 우리 잘못이라 생각하며 달의 계곡을 구경하러 갔다.
칠레 아타카마를 가는 사람들은 라파즈의 달의 계곡을 가지 말고 아타카마에서 달의 계곡을 가라고 많이 얘기했는데, 왜 그런지는 직접 보니 알 것 같았다. 규모도 그렇게 크지 않고 의외로 실제로 보니 크게 흥미롭진 않았다. 가장 중요한 날씨마저 구려 구경하는데 한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다시 라파즈 시내로 돌아왔다. 라파즈의 특징 중 하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도라는 타이틀답게 도시 내에서도 고도가 300~400미터를 왔다 갔다 했다. 그래서 발달한 대중교통이 케이블카였다. 지하철처럼 여러 노선과 환승구간 등이 존재했고 가격이 한번 타는데 우리나라 돈으로 500원 정도 했던 것 같다. 여담으로 라파즈의 케이블카는 호주에서 만들어줬다고 하는데 라파즈에 사는 한인들은 이 케이블카가 무너질까 걱정되며 믿지 못해 2주 동안 타지 않고 지켜보기만 했다고 한다.
그래서 라파즈의 케이블카인 '텔레페리코'를 타고 라파즈의 여러 사인을 찾으러 다녔다. 라파즈의 시내는 3689m, 라파즈에서 가장 높은 곳인 '엘 알토'는 무려 4095m였다. 도시에서도 단 10분 만에 고도를 400미터나 올라간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거기다 텔레페리코를 타는 동안 저 멀리 보이는 만년설인 '와이나포토시'도 볼 수 있었다.
저렴하게 텔레페리코로 시내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시내로 돌아왔다. 저녁을 어떤 걸 먹을까 하다 아무래도 볼리비아 현지식은 유명한 게 없다 보니 볼리비아의 물가를 이용해 (볼리비아에서) 비싼 스테이크 집으로 갔다. 이 동네에서 여기가 가장 비싼 레스토랑인지 대부분 유럽인들이 이 식당을 이용하고 있었다. 자리를 잡고 아웃백에선 비싸서 못 먹었던 토마호크 스테이크를 시켰다. 왜 비싼 값을 하는지 한입 먹자마자 알게 되었다.
나와서 숙소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예상치 못했던 곳을 들리게 되었다. 바로 '마녀 시장'이라는 곳인데 이곳에서 실제 알파카와 같은 것들을 말려 죽여 주술을 이용할 때 쓴다고 한다. 볼리비아에서는 이러한 말린 알파카 같은 것을 집 앞에 묻으면 행운이 온다는 미신 같은 것이 있어서 은근히(?) 잘 팔린다고 한다.
숙소에 들어와 정비를 좀 하고 보니 이미 하늘은 까맣게 칠해져 있었다. 라파즈에서 가장 유명한 전망대인 '낄리낄리 전망대'를 갈까 고민을 하였다. 일단 내가 예약한 숙소 이름부터 '더 루프탑'이었기 때문에 숙소 뷰를 먼저 확인한 후에 정하기로 했다. 그런데 숙소에서만 보는데도 정말 라파즈의 야경은 말이 필요 없었다. 덕분에 전망대까지 가지 않고 편하게 숙소에서 질리도록(질리지 않지만) 뷰를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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