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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시간을 잃어버린 공중도시

by 메르쿠리오 2021. 3. 17.

중남미 여행 - 9일 차 ; 페루

 

 다행히 오늘 일어났을 땐 머리가 지끈거린다던가 하는 증상은 없었다. 아무래도 1000미터나 내려왔기 때문일까, 여튼 일찍 준비하고 바로 마추픽추를 등반하기로 했다. 어제저녁 누군가 나에게 걸어 올라가는 것도 30분 정도밖에 소요되지 않는다고 버스비를 아끼라고 했는데, 그 사람을 다시 보게 된다면 아마 욕설부터 하지 않을까 싶다. 30분은 무슨, 숙소에서부터 마추픽추 입구까지 정확히 1시간 15분이 걸렸다. 거기다 길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돌계단이 정말 천국 가는 길도 아니고 끝이 없었다. 마추픽추에 서식하는 벌레들 때문에 긴 옷을 입고 가라고 해 긴팔 긴바지까지 입었더니 정말 땀으로 샤워를 2번은 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아무리 1000미터를 내려왔다고 해도 고산은 고산이기 때문에 조금만 올라가도 숨이 찼다. 정말 쌍욕이 나왔지만 악으로 올라가 오전 7시에 겨우 마추픽추 입구에 도착했다.

이미 여기 올라와있는 사람들은 다 버스를 타고 올라온거겠지. 정말 여기까지 오는게 너무 힘들었다.

 마추픽추는 6시부터 입장이 가능했는데 이미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오늘의 동행은 없는지라 바로 들어갔다. 입구에서 가이드들이 여행객들을 구하고 있었는데, 가이드를 통해 마추픽추의 역사도 같이 들으며 다녔어도 좋았을 것 같다.

 입구에서 조금 올라가니 바로 내가 아는 마추픽추의 그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마추픽추는 께추아어로 '늙은 봉우리'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 와서 안 사실이 우리가 보는 산이 마추픽추가 아니라 와이나픽추라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땅을 밟고 서있는 곳이 늙은 봉우리인 '마추픽추'였고, 그 땅에서 보는 높은 산이 젊은 봉우리의 '와이나픽추'였던 것이다.

마추픽추에서 바라보는 와이나픽추. 엽서 속 그곳에 왔다는것 자체에 엄청난 전율을 느꼈다.

 마추픽추를 가게 된다면 무조건 오전을 추천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자욱한 안개가 걷히는 마추픽추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그 장면을 보고 있으면 산신령이 등장할 것만 같은 비주얼을 보여주었다. 남미에 오기 전에 선물 받은 마추픽추 엽서를 가지고 본모습과 대조해보면서 사진도 찍어 보았다.

마치 아래에 분화구라도 있는것처럼 안개가 뿜어져 나오는게 장관이었다. 선물받은 마추픽추 엽서와 대조해 똑같이 찍어보기도 했다.

 마추픽추 투어를 하면 주의할 점이 하나 있다. 도입 부분을 제외하곤 왔던 길로 돌아갈 수 없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정말 꼼꼼하게 구경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몰랐던 나는 나중에 돼서야 많은 부분을 놓친 걸 알게 되었다. 여튼 마추픽추 내부를 구경하던 중 와카치나에서 같이 버기 투어를 진행한 한국분들도 만날 수 있었다. 거기다 좀 더 가니 비행 때부터 같이 동행했던 내 페루 동행도 만났다. 꼭 마추픽추가 만남의 장소가 된듯한 느낌이었다.

 마추픽추를 구경하면서 느낀 게 정말 잉카문명이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마추픽추가 발견된 지 이제 100년이 조금 넘었는데 그전까지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도시를 건설할 계획을 했을까... 왜 잃어버린 공중도시라고 부르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정말 장엄한 마추픽추의 모습. 주변 경관을 보고 있자니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느낌을 주었다. 

 초반부의 우리가 아는 마추픽추의 모습이 가장 멋있긴 하지만, 마추픽추가 가지고 있는 전경 전체가 다 멋있었다. 정말 산에서 정기를 받는다는 느낌을 여기서 알게 되었다. 평화롭고, 장엄하고 웅장한 마추픽추의 모습이 벌써 끝이 보이는 게 아쉬울 따름이었다.

마추픽추 공터에서 열심히 풀을 뜯어먹는 라마들. 정말 마추픽추는 어느 곳에서든지 완벽한 포토존을 만들어냈다.

 왔던 길로 돌아가지 못하니 결국 출구로 나오게 되었다. 여권에 공식적인 스탬프가 아니면 불법이란 말을 들어 포스트잇을 가져와 마추픽추 스탬프를 찍었다.

대부분 입국심사때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고 하지만, 운이 나쁘면 비공식 스탬프로 인해 제한이 걸릴 수 있다고 해 안전하게 포스트잇에 찍었다.

오랫동안 걸어 다리아 너무 아파 잠시만 쉬었다 갈까 해 마추픽추 입구 앞 까페를 들렸다. 카페에서 어제 히드로 일렉트리카부터 아구아스 깔리엔떼스까지 같이 동행했던 사람들을 만났다. 그분들은 와이나픽추를 먼저 투어 했고 지금 카페에 들려 잠시 쉰 뒤에 마추픽추로 간다고 했다. 다시 보니 반가운 마음에 같이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거기다 카페 뷰는 입이 아플 정도로 그냥 완벽했다. 마추픽추의 정기가 흐르는 카페라니, 더 말이 필요할까. 

솔직히 디저트는 크게 맛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뷰를 보며 먹는데 맛이 중요할까.(사실 중요하긴 하지만...)

외로운 동양인을 위해 같이 동행을 해준 세바스찬과 세시. 두분은 현재 스페인에 살고있다고 했다.

 올라올 때에 비해 내려가는 길은 수월할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올라올 때부터 느꼈지만 돌계단에 하나하나가 엄청 높아 절반 이상 내려갔을 땐 다리가 지진 난 것처럼 후들거렸다. 정말 다시 마추픽추에 오게 된다면 절대 걸어서 올라가지 않을 거라고 다짐했다.

 숙소에서 짐을 찾고 기차 시간에 맞춰 기차역에 갔다. 마추픽추도 마추픽추지만 마을 자체가 너무 아름다워 돌아가는 길이 정말 아쉬웠다.

마추픽추에서 내려올 때 분명 비가 왔었는데, 마을에 도착하니 귀신같이 해가 떴다. 그래서 더 아름다워보였던 '아구아스 깔리엔떼스'.

기차는 확실히 타보니 비싼 값을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가는 길은 물론이거니와 서비스까지, 리마에서 먹었던 피스코 사워의 원액인 피스코와 간단한 스낵, 레몬티 등이 제공되었다. 앞에 타있던 배 나온 독일 아저씨와 그 옆 핀란드 사람이 아시안에게 관심이 있는지 나에게 말을 걸어 얘기를 나누며 가는 동안 심심하지 않게 갈 수 있었다.

피스코 원액은 고량주처럼 정말 도수가 높았다. 올때 돈 좀 아끼자고 고생해서 왔는데, 기차를 타 보니 다음번엔 무조건 기차를 탈 것 같다.

 종착지에 도착했는데, 내가 아는 쿠스코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이 기차는 일명 성계 투어로 유명한 '오얀따이땀보'라는 마을이었고, 여기어 버스로 갈아타 쿠스코까지 가는 형식이었다. 나는 그걸 모르고 그냥 기차 예약만 했는데... 쿠스코에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두 번째 큰 고비가 찾아왔다. 다행히 쿠스코 벤을 운영하는 삐끼가 찾아와 무려 10 솔(한화로 약 3500원 정도)에 쿠스코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해 일단 벤에 탔다. 근데 벤이 출발을 하려면 최소 10명은 타야 간다고 하는데, 30분이 지나도록 나랑 한 아줌마를 빼고 아무도 타지 않았다. 슬슬 지치려고 할 때 한 이태리 분이 들어왔다. 그분도 한 5분 정도 있다가 기사랑 이래저래 얘기를 하더니 갑자기 나한테 말을 걸어왔다.

'너 이 벤 타려면 다음 기차까지 기다려야 돼, 우리 사람 모아서 택시 타고 가자. 얘네 오늘 내로 출발 못해'

라는 말을 하며 자기 눈을 보라고 그랬다. 확실히 이 기세로는 출발하지 못할 것 같아 일단은 벤에서 내렸다. 물론 벤에 타있던 아줌마도 그 이태리 분이 꼬셔서 같이 내렸다. 이제 한 사람만 더 구하면 싸게 택시로 쿠스코까지 이동할 수 있었는데, 기차가 도착한 지 한참이 지나 사람이 남아있지 않았다. 그래서 어떡하지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아까 내 앞에 앉았던 뚱뚱한 독일 아저씨가 걸어오고 있었다. 이태리 여성분은 기겁을 하면서 저 사람이 타면 오히려 택시가 출발하지 못할 거라고 했지만 어쩔 수 있나, 결국 그 비좁은 택시에 4명이 옹기종기 앉아 타고 가게 되었다.

 분명 오얀따이땀보에 4시쯤 도착했는데... 쿠스코에 도착하니 이미 해가 지기 시작했다. 이태리 분이 자기는 맥도날드에 갈 건데 같이 갈 거냐고 해 나도 딱히 땡기는 음식은 없어서 같이 가서 저녁을 먹었다. 먹으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그분은 출생이 아르헨티나고 이태리 피사에서 여행 가이드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서 영어와 이태리어, 스페인어 모두를 구사했다. 정말 가이드란 직업이 되게 멋있어 보였다. 나도 여기 와서 겪은 얘기를 해주니 너무 고생했다고 힘들었겠다고 했다. 헤어지기 전에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알려주며 아르헨티나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고 하며 헤어졌다. 

쿠스코에서만 파는 메뉴를 시켰었는데, 딱히 특별한 맛은 아니였던 것 같다. 너무 피곤해 먹고 바로 숙소로 들어가 내일을 위해 일찍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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