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여행 - 5일 차 ; 페루
버스에서 한참을 자다 날이 밝아선지 불편해서인지 눈을 떴다. 여기가 어딜까, 구글맵으로 봤지만 사실 어딘지 감도 안 오고 오래 남았겠거니 생각만 들었다. 버스에서 자는 동안 도난도 많이 당한대서 소지품도 열심히 확인했는데 다행히 이상은 없었다. 안심하고 창밖을 보는 순간 기절할뻔했다. 아무 안전장치도 없는, 도로라고 불리기도 민망할 절벽 위를 달리고 있었다. 정말 운전자가 조금만 방향을 잘못 틀면 바로 이번 생을 마감할 수준의 높이였다. 옆 동행도 잠에 깨서 창밖을 보는데, 자기는 중국 여행을 많이 가봐서 이 정도면 안전하다고 느낀댄다. 얘기를 하다 고도를 재보니 4천 미터가 넘었다. 차라리 잠에서 안 깼으면... 절벽을 달리는 걸 본 이후론 잠이 아얘 오지 않았다. 그래도 다행히 얼마 안가 나름 안전한(?) 곳으로 진입했다. 여전히 고도는 높았지만, 다행히 고산증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달리고 달려 무사히 아레키파에 도착했다. 그런데 내가 생각한 백색의 도시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일단은 주변에 신경 쓰기가 너무 힘들었다. 버스가 지연돼서 13시간이 지나서야 아레키파에 도착했기 때문에 숙소부터 바로 갔다. 짐을 풀고 좀 쉬다 보니 이제서야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슬슬 동행도 몸이 어느 정도 다 풀렸다고 해 시내로 나갔다. 시내로 나와보니 확실히 백색의 도시라는 이름이 뭔지를 보여줬다. 특히 아르마스 광장은 마치 유럽에 온듯한 느낌을 주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축제 같은 것도 하고 있어서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르마스 광장이 잘 보이는 레스토랑을 오랜만에 검색 없이 찾아갔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니 아레키파도 맛집이 많은 걸로 소문이 자자했다. 우리가 찾은 레스토랑은 맛보다 뷰 때문에 찾은 곳이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맛도 꽤 괜찮았다.
밥을 다 먹고 시장에 들러 코카잎을 샀다. 고산지대에 적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에서 나는 코카잎을 씹거나 우려서 차로 끓여먹어 적응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나중 가서 다시 얘기하겠지만, 코카잎이 고산병에 효과가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아레키파에 들린 이유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오고 싶어 했던 이유는 '콜카 캐년' 때문이었다. 그랜드캐년의 2배가 되는 협곡의 깊이와 페루의 전설이라고 불리는 콘도르를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랜드캐년의 약간 어두운 색과는 다르게 여기는 주변이 초록빛으로 물들여있다고 해 기대가 많이 되었다.
내일 콜카 캐년 당일치기를 예약하고 나오는데, 리마에서 만나고 와카치나에서도 만난 분이 금방 아레키파에 도착했다고 얘기해 다시 한번 보게 되었다. 스타벅스로 가 휴식을 취하며 고산지대 대비를 위해 따뜻한 물도 받아 코카 차도 같이 마셨다.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스타벅스를 나와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니 정말 남미가 아닌 작은 유럽 같았다.
동행이 여기 전망대가 유명하다고 해 야경도 볼 겸 전망대를 가기로 했다. 이 시간 때쯤에 다들 보러 오는지 정말 사람이 많았다.
야경을 보고 저녁을 여기서 먹고 가기 위해 주변을 탐색했는데 정말 맛있는 냄새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가게가 보였다. 고민 없이 들어가 자리를 앉았다. 염통 전문 가게였는데, 정말 아레키파가 맛집이 많은 걸로 유명한 걸 여기서 알게 되었다. 진짜 너무너무 맛있어서 몇 번을 계속해서 시켰다. 동행분은 너무 맛있다 보니 '염통을 더 먹고 싶어요'라고 번역기를 돌려 보여주니 직원이 놀라기 시작했다. 다시 영어로 해석해서 보니 '너의 심장을 먹고 싶어'라는 번역이 되었다. 마치 애니메이션 이름이 떠오르는 대목이었다. 딱 하나 아쉬운 게 이 집은 맥주를 팔지 않았다. 짭짤한 맛이 정말 술안주로 딱이었는데... 그래서 맥주를 왜 안 파냐고 하니 대신 커피는 있단다. 염통과 커피라니, 아쉬운 마음으로 커피는 포기하고 돌아갔다.
부족한 알코올을 채우기 위해 아르마스 광장으로 돌아와 루프탑 레스토랑을 올라갔다. 유럽에서 이런 뷰를 보며 식사하는 곳은 가격대가 엄청날 텐데, 마침 사람도 많지 않아 우리들끼리 조용히 아르마스 광장의 뷰를 보며 마실 수 있었다. 하지만 내일 갈 콜카 캐년을 위해 오랫동안 있을 수 없는 게 살짝 흠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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