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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사막 위 오아시스

by 메르쿠리오 2021. 2. 17.

중남미 여행 - 3일 차 ; 페루

 

 알람도 맞추지 않았다. 찝찝해서 깬 건지 시차 적응을 못해서 깬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어나니 새벽 6시쯤 되어있었다. 이제는 물이 나올까 기대에 찬 마음으로 수도꼭지를 틀어봤으나 내 기대감은 1초 만에 박살나버렸다. 정말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어서 숙소 리셉션 앞에 있는 포스트잇에 체크아웃한다는 메세지와 함께 키를 두고 짐을 챙긴 다음 나왔다. 심지어 이 숙소는 조식 예약까지 해놨었는데... 돈이고 뭐고 짜증이 나 더 이상은 여기에 있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오늘 갈 예정이었던 이카 버스 예매도 안 했기 때문에 터미널에 들려 예약도 하고 터미널 화장실에서 씻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판단해 우버를 불러 버스터미널로 갔다.

 다행히 9시 반에 가는 버스 자리가 남아있어 예약을 하고, 바로 화장실로 갔다. 여기도 유럽처럼 터미널인데도 불구하고 화장실을 가는데 돈을 받았다. 정말 어제부터 짜증이 치솟았지만, 그래도 여긴 한화로 약 350원 정도에 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유럽보다는 기쁜 마음으로 돈을 지불하고 들어갔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씻기 전, 배가 갑자기 너무 아팠다. 여행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비운적이 없기도 해서 그런지 갑자기 신호가 엄청나게 왔는데 휴지가 없었다. 당장 큰일을 보고 나온 사람을 붙잡고 그때 당시 유이하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스페인어인 뽀르 빠보르(영어로 Please라고 보통 쓰인다.)를 남발하며 급하다는 표현을 최대한 지었다. 다행히 그분이 웃으면서 가여웠는지 남은 휴지를 줬다. 그라시아스를 남발한 뒤 바로 화장실로 들어가 볼일을 해결했다. 버스를 타기 전에 신호가 와서 정말 다행이었다.

사실 겉만 봤을 땐 정말 무서워보이는 아저씨였는데, 웃으며 내 생명을 구해줬다(?).

 말끔히 해결하고 난 다음 화장실로 나와 머리도 감고 싶었지만 손과 세안까지만 했다. 그간 묵었던 것을 다 배출해서 그런지 이번엔 갑자기 배가 미친 듯이 고프기 시작했다. 아직 시간이 널널하게 남아있었기에 터미널에 있는 편의점 같은 곳에 가 빵만 사려고 했는데 내 눈에 띈 음료가 있었다. 바로 '잉카 콜라'인데, 코카콜라가 유일하게 음료 매출에서 진 곳이 페루라고 했다. 페루는 잉카문명의 역사를 담은 잉카 콜라(?)라는 제품이 너무 인기가 많아 코카콜라가 매출이 나오지 않아서 결국 잉카 콜라를 만드는 회사를 사버렸다고 한다. 여하튼 평소에는 탄산을 먹지 않지만 페루에서만 파는 잉카 콜라를 보니 한번 먹어보고 싶어 빵과 같이 구매했다.

기대와는 다르게 흔한 탄산 맛이다. 사실 코카콜라가 매출이 떨어질 이유를 모르겠다.

 버스는 4시간 반 정도 걸렸는데, 내 옆에 앉은 젊은 친구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그 친구는 영어를 단 한마디도 할 줄 몰랐기에 서로 소통하는 데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그래도 가는 동안 심심하지도 않았고 약간이나마 스페인어를 늘리는데 도움을 주었다. 이 친구는 이카 은행에서 일하고 있으니 필요한 게 있으면 은행으로 오면 도와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난 이카에 하루밖에 없는걸...

이 친구와 찍은 사진이 분명 있었을텐데, 인스타그램밖에 보이지 않는다.

 동행에게 연락했는데 잠시 약을 사러 이카에 나와있다고 했다. 그래서 이카에서 밥과 간식을 먹고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막 위의 오아시스인 와카치나를 붕붕이를 타고 갔다. 이카 지역 자체도 사막이지만, 와카치나는 오아시스를 품고 있었기에 휴양지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고 해 더 기대가 되었다.

이카 도시는 사막을 처음 가봤지만, 내가 생각한 전형적인 사막의 느낌이였다. 동행을 기다리며 과일을 하나 먹었는데 맛있었다.

 이카 시내에서 와카치나까지는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고 요금도 인당 1000원 정도밖에 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서 감이 잘 잡히진 않았는데, 거대한 사막을 달리다 보니 어느샌가 오아시스가 보이기 시작했다. 오아시스를 인공적으로 만들었다곤 했지만, 처음 보는 광경이었기에 너무 아름다웠다.

날이 흐렸는데도 정말 아름다웠다. 수영은 하고싶었지만 아쉽게도 지금보다 몸이 더 더러워질것만 같은 물 색이였다.

 숙소에 들려 체크인하고 버기 투어를 예약했다. 동행분은 어제 진행했기 때문에 5시 15분 예약으로 혼자 이름만 적고 나온 뒤 내일 할 투어는 같이 예약하러 갔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내일 나스카로 넘어가야 했지만, 아무래도 나스카는 경비행기 투어이다 보니 가격대도 좀 있고 무엇보다 나스카 라인을 보러 갔다가 멀미로 끝나는 경우가 다반사라고 많이 얘기해 그냥 내일도 와카치나 에서 투어를 하고 바로 다음 지역으로 넘어가기로 루트를 변경했다.

 와카치나는 투어 종류가 정말 많았는데, 개인적으론 와인 투어를 진행하고 싶었지만 너무 짧아 아쉬울 것 같아서 로스트밸리 투어를 신청했다. 예전 그랜드캐년의 느낌도 나는 분위기라고 해 멋있을 것 같았다. 

얼핏보면 내 카메라를 훔쳐가려는 강도같아 보이지만, 투어사 직원이다. 외모와 다르게(?) 매우 친절했다.

 버기 투어 시간이 가까워져서 저녁을 먹을 때쯤 만나자고 했는데, 동행분이 버기 투어를 하는데 마스크가 없냐며 마스크를 하나 주었다. 사막이기때문에 모래가 몸에 구멍뚫린 곳으로 다 들어간다고, 원래 렌즈도 끼고 가려고 했지만 렌즈도 안끼는게 좋다고 말했다.

 버기투어 시간이 다 돼서 도착했다. 예약할 땐 나 빼고 다 외국인이었는데, 다행히 도착했을 땐 한국분이 두 분이나 더 계셨다. 무엇보다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셨기 때문에 정말 감사했다. 

 버기 투어는 기대 이상으로 재밌었다. 사막의 능선을 넘나들며 달리는데, 정말 놀이공원보다 더한 스릴을 보여줬다. 와카치나에서 사막으로 오랫동안 달린 다음 꽤 높아 보이는 사막 봉우리에 도착해 샌드 보딩을 타게 되었다. 기존에 보드를 타는 사람들은 서서 탔지만, 한 외국인을 제외하곤 다 보드를 탈 줄 모르는지 누워서 보딩을 즐겼다. 근데 개인적으로 서서 타는 것이 간지는 나겠지만 누워서 타는 게 훨씬 재밌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버기투어를 출발하기 위해 대기중인 차량들. 사막을 달려야 하기때문에 차량이 전부 특수 개조되어있었다.

동영상보다 실제로 가서 보면 정말 각도가 아찔하다. 그래도 우리 팀 모두가 안전하고 재밌게 샌드보딩을 즐겨서 더 좋았다.

 투어의 마지막 타임으로 신청했더니, 마을에 돌아올 땐 해가 저물기 시작했다. 오아시스에서 보는 야경이라니... 정말 숨 막히게 아름다웠다. 여행하면서 휴양지를 거의 가보진 않았지만, 왜 사람들이 휴양지를 찾는지 알 것 같았다. 

투어가 끝나 내려가는 길에 마을 모습을 봤는데, 사막의 밤이 이렇게 아름답구나 깨달았다. 다시 갈 수 있을까.

 한 한 시간 정도를 더 사막위에서 보낸 뒤 버기 투어를 같이했던 한국분들과 헤어지고 먼저 씻으러 갔다. 근데 정말 마스크가 신의 한 수라고 느꼈던 게, 바지를 털어도 털어도 모래가 계속해서 떨어져 나왔다. 휴대폰에도 모래가 침투해 특히 충전기 쪽에 모래를 빼는 것도 일이었다. 샤워를 할 때는 샤워기에서 마치 물이 아니라 모래가 나오는 것 같았다.

 씻고 난 다음 동행 분과 연락해 밥을 먹기로 했다. 그런데 어제 리마에서 만난 여자분과도 연락이 되어 셋이 만나 근처 괜찮아 보이는 레스토랑에 갔다. 하도 활동적인걸 해서 그런지, 모든 음식이 다 맛있었다.

이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음식을 먹었다. 양식에 맥주는 정말 완벽한 조합이다.

 숙소로 돌아와 해먹에 누워 남은 여유를 즐겼다. 내일 투어를 갔다가 하루만 더 와카치나에 머물고 싶었다. 이 숙소에서 바베큐 파티도 매일 열리고, 수영도 해야 하는데... 정말 많은 고민을 했지만, 다음 도시도 엄청난 설렘이 있을 거란 기대를 하고 내일을 위해 돌아갔다.

와카치나는 정말 숙소마저도 완벽했다. 흐린 날씨를 제외하곤 모든 곳에 별점 만점을 주고싶었던 사막 위의 오아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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