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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모아이 방방곡곡

by 메르쿠리오 2021. 5. 22.

중남미 여행 - 23일 차 ; 칠레

 

 바닷소리에 잠에서 깼다. 정말 어제 연습했던 것처럼 문을 열고 나가니 파도가 내쪽으로 부서지고 있었다. 게다가 어제와는 다르게 아침부터 쨍쨍한 날씨까지, 섬에 있는 모든 모아이들을 찾아 나서기 정말 좋은 날이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찰랑거리는 바다소리에 행복하게 눈을 뜰 수 밖에 없었다.

 미역국 라면으로 아침을 든든하게 먹고 호스텔 직원을 찾으러 다녔지만 보이지 않았다. 한시라도 빨리 오토바이를 대여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오늘밖에 시간이 없어 이스터섬의 마을인 항가로아로 나가 오토바이 대여점을 찾기로 했다.

휴양지에서 특히 중요한 날씨가 오늘은 정말 최고였다. 날이 좋을때 한시라도 빨리 움직이기 위해 오토바이 대여점을 찾았다.

 가격이 호스텔에서 대여하는 것보단 비쌌지만 그래도 직원이 언제 등장할지 모르니 일단 대여하기로 했다. 운전면허밖에 없어서 오토바이는 빌리지 못하고 4륜 구동인 ATV를 빌려서 나갔다. 사실 장롱이라 좀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운전 방식이 너무 단순해 운전에 어려움은 없었다.

하루동안 내 애마(?)였던 ATV. 확실히 4륜이라 매우 안정적이고 운전이 쉬웠다.

 가장 먼저 향한 곳은 항가로아에서 가까운 '오롱고'로 나섰다. 오롱고는 분화구이자 호수인 '라나카우'를 주위로 존재했던 작은 터였다. 라나카우를 보기 전 올라가는 길에 파란 바다가 정말 인상적이였다. 어떻게 보면 핵심인 라나카우보다 더 인상깊지 않았나 싶다.

배경이 너무 좋으니 막 찍어도 그냥 그림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나왔다. 특히 태평양 위 구름이 대박이었다.

 처음에는 호수인 라나카우를 오롱고라고 하는 줄 알았는데, 이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곳이 오롱고였다. 뭐 어쨌든 내가 보고싶은것은 터가 아닌 분화구였으니...

오롱고를 있게 해준 '라나카우' 분화구. 잡초들 사이로 보이는 물이 얼마나 푸른지 대강 봐도 보였다.

 정상에 올라오니 박물관도 보였다. 라파누이의 정확한 역사를 몰라 인터넷에 나온 것을 기반으로 설명하자면, 오롱고는 '버드맨'을 선발하는 자리였다. 버드맨은 쉽게 생각하면 통치자인데, 매우 위험한 도전을 통해 성공하면 1년동안 통치자인 버드맨이자 '탕가 타마누'의 역할을 누릴 수 있다고 한다.

막상 오롱고에는 오히려 내 관심 대상 밖이였다. 그래서 표지판을 제외하곤 사진이 없었다...

 오롱고는 라파누이에 입국할 때 구매한 티켓으로 딱 한번만 입장이 가능했다. 그래서 박물관에서 화장실까지 들린 다음 다 둘러봤는지 확인한 후에 오롱고를 나왔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2개의 출구를 가진 동굴 '아나 카켄가'로 갔다. 지도상으로 봤을 땐 숙소에서 충분히 걸어갈만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ATV를 타고 와보니 걸어가는건 말도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일단 자동차나 오토바이로도 올라가는 곳엔 한계가 있어 중간에 정차하고 걸어가야 했다. 땡볕에 오르막길을 올라가려니 정말 힘들었지만, 그래도 세상 평화로운 풍경을 감상하니 힘을 내어 아나 카켄가의 표지판이 보이는 곳까지 올라갔다.

어딜 가든 태평양 바로 위에 걸친 구름 덕에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런데 도대체 동굴 입구는 어디에 있는걸까,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보이지 않았다. 인적도 드물어 한참을 찾고 있었는데, 한 아저씨가 내가 동굴을 찾고 있는것처럼 보였는지 저기로 들어가면 된다고 했다. 그런데 난 처음엔 농담인줄 알았다. 사람이 들어가라고 만든 곳이 맞나 싶을정도로 비좁았다.

난 아직도 내가 저 구멍을 들어갔다는게 믿기지가 않는다. 지금은 살이 쪄서 허리에서 걸릴 것 같다.

 일단은 믿고 계속 내려갔는데, 들어가면 갈수록 길이 점점 말도 안되게 좁아지고 너무 어두컴컴해 무서웠으나, 후엔 정말 깜짝 놀랄만한 장면이 펼쳐졌다. 두 개의 창 밖으로 이스터섬의 해안선이 보였는데, 이게 정말 아름답다는 말로는 부족할 정도로 감동적이였다.

이스터섬에서 보물을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동굴에서 빛을 따라 가니 이러한 보석같은 풍경이 펼쳐질 줄이야...

 다만 이 동굴을 보러 오는 사람이 너무 없어 살짝 겁이 나 오래 있지는 못하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나와서 하늘을 보는데 정말 날씨가 끝내줬다. 아직 모아이는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자연경관만 보러 다녔는데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숙소에 들려 밥을 먹고 오후엔 제대로 된 모아이투어를 진행하기로 했다.

하늘도 바다처럼 정말 파란색을 띄었다. 하늘을 보고 바다를 보니 포카리스웨트를 마신 듯한 느낌을 줄 정도로 청량했다.

 점심을 먹고 방문한 곳은 모아이 공장 또는 채석장이라고 불리는 '라노 라라 쿠'로 향했다. 항가로 아 마을에서 라노 라라 쿠는 거리가 거의 끝과 끝이여서 꽤나 오래 걸렸다. 여기도 또한 티켓을 가지고 있는 동안 한 번만 입장이 가능했다. 체크인을 하고 들어가니 이스터섬의 시그니처 캐릭터(?)를 직접 볼 수 있었다. 

책이나 엽서에서 이스터섬이 등장하면 반드시 같이 딸려오는 2명의 모아이. 직접 보니 정말 신기했다.

 채석장이라는 별명답게 큰 모아이, 작은 모아이, 만들다 만 모아이 등 여러 모아이들이 언덕에 콕콕 박혀있었다. 현재로썬 모아이에 대한 미스테리가 풀렸지만 맨 처음 발견했을 땐 충분히 외계인이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엔 모아이를 하나하나 다 세려다가 너무 많아 포기했다. 

 그래도 라노 라라쿠에 있는 모든 모아이들에게 인사를 한 뒤 바로 옆에 있는 '아후 통가리키'로 갔다. 원래는 라노 라라쿠가 모아이의 심장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음에 포스팅하겠지만 일출까지 본다면 이스터섬의 진짜 주인공은 아후 통가리키가 아닐까 싶다.

라노 라라쿠에서도 '아후 통가리키'를 멀리서 볼 수 있었다. 여기 또한 라노 라라쿠와 더불어 유명한 스팟이라 빠르게 구경하러 갔다.

 해안가를 등지고 있는 15명의 모아이들, 마치 라파누이를 지키는 수호신 같았다. 일자로 서있는 모습을 보니 문득 우유니 섬에서 타임랩스를 찍었던 것이 생각나 내가 직접 모아이를 찍어주기로 했다.

이쁘게 찍어주고 싶었지만, 주변 길이 너무 매끄럽지 못했다. 그래도 귀여운 모아이를 담았으니 만족.

 구경하던 외국인에게 16번째 모아이가 되게 해달라고 사진을 부탁했는데, 내 영어실력이 구린 건지 외국인이 사진 찍어주는 게 귀찮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성의가 없었다. 결국 모아이 가족사진을 포기하고 구경만 좀 더 하다가 다시 드라이브를 하러 나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찍기 귀찮아했던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구도가 나올 수 있었을까...

 그냥 가려다가 구글맵에 보니 한 해변이 검색이 되었다. 이왕 끝까지 온 거 조금 더 올라가 해변을 보러 갔는데 여기에도 특별한 모아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모자를 쓰고 있는 모아이들이었는데, 아마 해변에 왔으니 얼굴이 그을리는 걸 방지하기 위해 모자를 썼나 보다. 

모아이도 피부 관리를 위해 모자를 썻나보다. 다 좋은데 선크림을 제대로 안바르고 다니다보니 이스터섬에서 결국 살이 벗겨졌다.

 그런데 이 모아이보다 매료된 것은 해변의 모습이었다. 정말 친구들과 차를 끌고 와서 수영하고 싶은 곳이었다. 내가 생각한 휴양지의 모습과 가장 근접했다. 수영복과 옷을 갈아입을 공간인 차만 있었더라면, 오랜만에 혼자 온 것이 외롭고 고되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아름다워서 너무 행복했고, 행복해서 너무 외로웠던 잊지 못할 라파누이의 한 해변.

모아이들을 바라보며 수영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꼭 다시 오고싶은곳 중에 하나였던 해변.

 정말 속으로 수영할까 말까 100번은 고민하다 해변만 구경한 채 숙소로 돌아왔다. 완전 끝과 끝이었지만 그래도 작은 섬이었기 때문에 40분 정도만에 다시 숙소로 돌아올 수 있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을 먹은 뒤 맥주를 들고 숙소에서 선셋을 즐겼다. 근데 우리 숙소 앞이 유명 선셋 포인트인지 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숙소 앞에서 선셋을 보고 있었다.

노을만큼은 편하게 집앞에서 볼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구름이 많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금색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역시나 오늘도 축제와 함께 장이 열렸다. 대충 멀리서부터 들리는 소리가 어제랑 똑같은 레파토리인 게 뻔해 축제는 보러 가지도 않고 어제 찜해놨던 햄버거 가게를 찾았다. 어제 생각났을 때 바로 먹었어야 했는데, 너무 기대한 탓일까. 일단 무엇보다 패티와 양파 2개만 들어가는 수준의 햄버거가 무려 한화로 약 6천 원이나 한다는 게 말이 안 됐다. 그래도 이스터섬에서 처음으로 사 먹는 음식이다 보니 양파 하나도 흘리지 않고 깔끔하게 먹었다.

백번 생각해도 역시 이스터섬에선 뭘 사먹지 못할 것 같다. 이런 햄버거가 6천원이라니, 어제는 왜 맛있어 보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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