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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대륙의 끝

by 메르쿠리오 2021. 5. 31.

중남미 여행 - 25일 차 ; 칠레

 

 칠레가 워낙 길다 보니 어느 도시를 가던 비행기를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대륙의 끝이라고 불리는 푼타 아레나스는 사실 내 관심사 밖인 곳이지만, 국내선은 저렴하고 국제선은 말도 안 되게 비싼 남미이기 때문에 칠레 국내선인 푼타 아레나스를 거쳐 아르헨티나까진 버스를 타고 넘어갈 예정이었다.
 아침 9시 반쯤 푼타 아레나스로 도착해 버스터미널로 가 그날 2시에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버스를 예매하고 배낭부터 맡겼다. 실질적으로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3시간도 남지 않았는데 푼타 아레나스를 찾아본 정보도 딱히 없어 그냥 무작정 시내를 나가보기로 했다. 애초에 작은 동네에다가 다른 지역을 가기 전 거쳐가는 도시로 많이 이용되는 곳이라 그런지 내 눈에 띄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다른 나라에서 지겹도록 본 성당도 여기선 하나의 랜드마크인듯한 느낌이었다.

 그래도 광장으로 나오니 사람들은 꽤 있었다. 거기에 마젤란 동상이라는 특별한 동상이 있었는데, 이 마젤란 동상 아래에 있는 인디언의 발을 만지면 푼타 아레나스로 다시 돌아온다는 미신이 있었다. 그 말을 듣고 사람들이 발을 하도 만져댔는지 발만 하얗게 빛나 있었다. 물론 나도 그 미신에 동참하기로 했다.

슬픈 사연이 있어보이는 동상인지라 발을 만지기 미안했지만,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 강했었다. 


 광장 뒤로 가보니 펭귄을 마스코트로 한 귀여운 기념품 샵과 호스텔이 보였다. 아무래도 땅끝마을인 이곳 바다를 넘어가면 남극이 나오기 때문에 펭귄 투어 등도 진행해서 펭귄 이미지가 많이 보이는 듯했다. 그래서 귀여운 펭귄을 볼까 하며 투어 가격을 알아봤는데, 귀엽다는 느낌이 싹 사라졌다. 아무래도 펭귄을 보려면 다음엔 더 돈을 모아서 와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귀여운 펭귄과 그렇지 않았던 펭귄 투어의 가격들. 발도 만졌겠다 돈을 더 벌어서 나중엔 펭귄투어도 한번 해봐야겠다.

 기념품 샵을 지나 언덕으로 쭉 올라갔다. 전망대에 도착하니 남극으로 이어진 바다 전망이 정말 상쾌했다. 거기에 내 눈에 띈 하나가 더 있었는데 이곳에서부터 각 나라별 이동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있었다. 원래 이 이정표에 우리나라는 없었는데 이곳에 사는 한국인들이 우리나라 이정표도 붙였다고 한다. 푼타 아레나스로부터 우리나라까지 거진 18,000km라니, 새삼 진짜 멀리까지 왔구나 생각이 들었다.

지구 반대편에서 남극과 우리나라를 바라보는 날이 올지 누가 알았을까. 작은 이정표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전망대를 구경한 후 내려와 바닷가로 가보았다. 멀리서 봤을 땐 펭귄을 본 줄 알고 신나 있었는데, 가까이서 보니 펭귄은 아닌 듯싶었다. 그 옆에는 푼타 아레나스 사인이 보였다. 알지도 못했는데 디자인이 마음에 들어 주변 관광객에게 사진을 부탁했다.

그래도 생김새를 보면 펭귄 친구는 되지 않을까 싶었다. 푼타 아레나스 사인은 마치 2000년대 컴퓨터 화면보호기 폰트같았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넘어가기 전 점심을 먹으러 움직였다. 푼타 아레나스에는 한인이 운영하는 라면집이 2개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그 유명한 무한도전에 나온 아저씨 집이었다. 그래서 원래 그쪽으로 갈까 했지만, 어쩌다 보니 다른 쪽으로 가게 되었다. 이스터섬에서 지겹게 라면을 먹었지만 또 라면이란 메뉴를 선택하다니, 이제 보면 다른 곳을 갈껄 그랬다.

한인 라면 가게중 한 곳인 '아카키코 스시'. 한국 사람이 왔다고 튀김을 더 많이 주셨다.

 라면을 먹는 도중 스페인 여행객 커플이 왔다. 자리가 좁다 보니 그 친구들과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그 친구들은 한식을 좋아해서 칠레로 여행 와서도 한식집인 이곳 라멘 가게를 들렸다고 한다.
 버스 시간이 다가와 먼저 자리를 떠 버스를 타러 갔다. 아무래도 공항 노숙을 해서 그런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할 때까지 한 번도 깨지 않았다. 원래 오늘 아르헨티나인 엘 칼라파테까지 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엘 칼라파테로 가는 버스가 별로 없다 보니 수수료를 물고 엘 칼라파테 숙소를 취소하고 새로 숙소를 잡았다. 그런데 숙소가 정말 터미널을 나가자마자 있었다. 이게 나중에 또 신의 한 수가 될 줄을 상상이나 했을까.
 숙소에 짐을 풀고 잃어버린 내 세면도구들도 사고 동네 산책이나 할 겸 구글맵도 키지 않고 길을 따라 걸었다. 근처에 바로 마트가 있어 마트를 들려 세면도구들을 산 뒤 걷다 보니 바다인지 호수인지는 모르겠으나 꽤나 멋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거기엔 우리나라에서와 비슷한 손가락 모양의 조형물과 곰 조형물, 그리고 푸에르토 나탈레스 사인까지 있었다. 이젠 길을 보지 않아도 여행스팟에 끌리는 무언가가 생겼나 보다.

치약 칫솔 선크림 등 모든걸 다 공항에 놓고 와버렸다. 이렇게 멍청할 수가... 그래도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휴식을 취해 좋았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푼타 아레나스에 비해 사인이 작아서 이쁘진 않았지만, 그래도 곰 조형물이 마음에 들었다.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뭘 먹을지 모르겠어서 직원에게 추천해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가게에서 운영하는 곳인지 한 명함을 주었다. 그곳에서 연어 스테이크와 매쉬포테이토 그리고 파타고니아산 맥주까지 시켰다. 이스터섬에서 열심히 아낀 밥값을 오늘 한 번에 다 충당한 것 같았다.

적절한 굽기의 연어 스테이크와 맥주의 조합이 정말 좋았다. 딱 하나 아쉬운건 크기가 작았다는 것 뿐...

 슬슬 해가 늦게 지기 시작하는지 밥을 먹고 나왔을 때 노을이 지기 시작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보는 노을이라니, 앞 놀이터에서 노을을 보며 잡생각을 하다 더 어두워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갔다.

아무도 없는 적적한 공원에서 노을을 보는것이 정말 좋았다.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를 빨리 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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