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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태평양 한 가운데

by 메르쿠리오 2021. 5. 17.

중남미 여행 - 22일 차 ; 칠레

 

 칠레는 왜인지 하루도 평범하게 넘어가는 일이 없는 것 같다.

이스터섬은 국제선과 동일하게 취급한다고 해 아침 일찍 공항으로 나섰다. 시간도 넉넉해 아침을 먹고 여유롭게 체크인까지 완료했다.

아침부터 토스트와 휘핑크림을 잔뜩 올린 커피로 거하게 당충전을 했다. 기내식을 주는줄 알았으면 자제했을텐데...

 하지만 이스터섬을 가본 적이 있어야지, 인터넷으로 전자 서류만 작성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이것도 최근에 생긴 제도이다.) 확인서도 끊어야 된다고 했다. 그걸 보딩타임을 시작할 때 직원이 알려준 곳으로 정말 미친듯이 뛰어가 어찌저찌 탑승 확인서를 끊어서 왔다. 원래 짐검사를 마친 뒤 그 앞 이미그레이션에서 여권 확인 후에 준다고 했는데, 분명 내가 갔을땐 이미그레이션을 보지 못했었다. 언제 갑자기 생긴건지... 그래도 마지막 탑승객이지만 제시간에 비행기를 띄울 수 있었다.

 이스터섬은 비행 가격도 정말 비싸고 칠레에서도 편도로 5시간이나 걸리는데다가 모아이를 제외하면 제주도와 별 다를바 없다고들 해 대부분 여행자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곳이였다. 나 또한 비행 경비 중 1/5가 무려 이스터섬을 차지할 정도로 비쌌다. 그래도 나는 제주도를 수학여행 말고는 가본적이 없었고, 남미 여행을 간다면 볼리비아의 우유니 소금사막과 더불어 꼭 가고싶었던 곳이였기 때문에 적당한 가격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 예약했는데도 비행경비에만 무려 50만원이나 들었다. 그래도 국제선처럼 기내식도 주고 신비하고 평화로운 섬을 가는 사람들이다 보니 기대감과 행복감에 가득찬 표정들로 인해 나까지 즐거워졌다.

칠레에서도 무려 편도로 5시간씩이나 걸리는 '이스터 섬'. 비행사도 독점이라 가격이 비싸지만, 그래도 비싼 값은 했다.

 이스터섬에 도착했는데 날씨 요정이 어디갔는지 곧 비가 내릴것만 같았다. 이스터섬에 이틀밖에 시간이 없는데... 게다가 이스터섬은 비행기 값만 지불한다고 되는 문제가 아니였다. 섬에 도착하면 입장료도 내야 하는데 이게 한화로 약 8만원에 달했다. 환경 문제로 인해 입장료를 내는 것도 알고 있었지만 비행기 값도 비싼데... 너무 쉽게 돈을 뜯기는 느낌이였다.

도착했을 때 보이는 많은 구름이 느낌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입장료가 없으면 모아이 스팟을 구경할 수 없다고 한다.

 이스터섬의 특이한 점은 공항을 나오면 자기가 예약한 숙소에서 픽업을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나도 찾아봤는데 정말 나를 위해 마중나와 있었다. 나 말고 일본분도 한분 더 계셨는데, 우리를 위해 환영 인사로 꽃목걸이를 전해주었다. 

꽃목걸이 하나로 하와이에 온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날씨는 흐렸지만 느낌은 맑았다.

 숙소로 들어오자마자 비가 오기 시작했다. 짐이나 풀고 좀 누워있었는데 다행히 비가 금방 그쳤다. 게다가 비가 개고나니 태평양 한 가운데의 환상적인 날씨를 보여주었다. 심지어 숙소 앞이 바다라 그런지 정말 숙소 문만 열어도 행복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자리에서 눈만 뜨고 문 밖을 나가면 이런 풍경을 볼 수 있다니... 내일 아침이 기대됐다.

 첫날에다가 비도 와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자전거만 빌리려고 했는데, 주인이 벌써 퇴근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가볍게 산책 겸 태평양 해안가를 따라 걸어갔다. 중간중간 호텔을 지날 때면 작은 모아이들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제주도를 제대로 구경해보진 못했지만 모아이만 돌하르방으로 바꾸면 정말 제주도라고 해도 믿을 수준인 것 같았다.

첫날 가장 기억에 남는 모아이는 공동묘지를 지키는 모아이가 아닐까 생각된다. 마치 우리나라의 장승처럼...

 태평양 한 가운데라 그런지 물 색깔이 정말 진한 파랑색이였다. 바다를 따라 계속해서 가다 보니 작게 수영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나왔다. 조금있다 다시 오기로 하고 조금 더 멀리 나아갔다. 그러니 드디어 진짜 모아이를 볼 수 있었다. 시내에 있는 모아이라 그런지 크기가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이 7대 불가사의라고 불리는 모아이를 직접 보니 너무 신기했다.

눈 뜬 모아이, 여러 명의 모아이, 아기 모아이(?) 등 시내에서도 모아이를 볼 수 있었다. 따라해본것은 덤.

 모아이랑 한참을 논 다음 다시 20분정도를 걸어 숙소로 돌아가 수영복을 가지고 아까 바다수영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다시 갔다. 여기에 있는 개들도 피곤한지 햇빛을 피해 쿨쿨 자고 있었다. 개들이 지켜줄거란 믿음으로 옆에 짐을 놓고 첫 바다수영을 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바다 속을 들여다 볼때마다 니모같이 생긴 물고기들이 내 옆으로 지나갔다. 신기해하면서 바다 속을 보고 있으니 옆에 있는 한 외국인 친구가 너가 운이 좋으면 자라도 볼 수 있을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하쉽게도 내가 수영하는 동안에는 자라가 나타나진 않았다.

세상 파란 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다니, 물에 들어가기 전부터 설레였다. 개들도 더운지 그늘을 찾아 잠을 자고 있었다.

 슬슬 수영을 마치고 저녁을 먹으러 돌아갔다. 시내에 작은 마트로 가 라면에 넣을 계란을 사러 갔는데 계란이 없단다. 아쉬운대로 앞에 보이는 소세지와 맥주를 하나 사서 라면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은 후 숙소 앞 바다에서 노을을 보러 나갔는데 일본 친구가 이미 자리를 잡고 노을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도 근방에 같이 앉아 아무말 없이 노을을 바라보고 있으니 일본 친구가 맥주 한병을 주었다. 그걸 계기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그 친구는 한 회사에서 20년을 근속해 2달간 휴가를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어디서 휴가를 보낼까 하다가 남미로 왔다고 했다. 20년간 한 회사를 다닌 이 친구도 대단하지만 휴가를 2달동안이나 한번에 준 회사도 참 대단해보였다.

처음으로 맥주 한병에 노을로 안주를 삼았다. 매일 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이스터섬에선 매일 저녁 행사를 한다고 해서 찾아갔는데, 막상 가서 보니 굳이 찾아서 볼 필요는 없는듯 했다. 하나 신기한거라면 아직 이스터섬은 라파누이어를 사용해 통역가가 라파누이어-스페인어를 통역해 주었다. 느낌상 그냥 이스터섬에 온걸 환영한다, 이곳에서 편히 쉬다 가십시오와 같은 당연한 말을 길게 하는 느낌이였다. 

무엇보다 큰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생각보다 너무 현대적이여서 그런걸까, 옆 레스토랑에서 유료로 보는 공연이 더 재밌을 것 같았다.

 다른것보다 행사가 시작되면 앞에 야시장이 열리는데, 무대 이벤트보단 야시장에서 파는 햄버거가 너무 맛있어보였다. 그래서 내일은 야시장에 들려 음식을 먹으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재미없던 이벤트를 뒤로 하고 숙소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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