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여행 - 4일 차 ; 이탈리아
오늘은 투어도 스케쥴도 없었지만 여전히 시차 적응에 실패했기 때문에 일찍(그나마 늦게 일어나서 6시 반에) 일어났다. 강제로 눈이 떠지니 할 것도 없고 해서 오늘은 어딜 갈까 고민했다. 나름 로마를 대중교통수단을 거의 타지 않고 걸어 다녔기 때문에 로마 시내는 사실상 다 돌았다고 생각해 근교를 가기로 했다. 어차피 유레일패스도 있겠다, 오늘부터 사용하게 되면 내 유럽여행이 끝날 때 까지는 문제없이 사용 가능하기 때문에 오늘 개시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대표적인 근교들인 피렌체나 피사 등이 나왔지만 거기는 어차피 곧 가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알아봤다.
이틀 전에 갔던 포지타노가 너무 아름다웠던 기억이 있어 포지타노처럼 골목 구석구석이 이쁜 곳을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찾게 된 곳이 '아씨시'라는 마을이었는데, 수백 명의 수녀님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라고 했다. 그리고 신혼여행 스냅샷을 찍으러 이 마을을 많이 찾는다고 해 마을 자체가 이쁘다는 것은 안 가도 증명이 될 수준이었다.
씻고 나서 바로 떼르미니 역으로 출발했다. 떼르미니 역에 와서 유레일 패스를 사용하려면 처음에 스탬프를 찍어 사용할 수 있는 상태로 바꿔야 하는데, 개시를 어떻게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얼타고 있는 게 보였는지 한 직원처럼 생긴 사람이 다가왔다. 도움이 필요하냐고 해서 어디 가냐고 물어보는데 여행 초보인 내가 봐도 직원인 척하는 사기꾼 같았다. 그래서 이탈리아가 아닌 독일의 '퓌센'이라는 지명을 대면서 나 여기 가는데 어떻게 가냐 하더니 그 사기꾼이 당황해했다. 그 사이에 도망쳐 나와 정식 인포메이션 센터로 가서 스탬프 개시를 어떻게 하는지 설명을 짧은 영어로 대충 알아듣고 힘겹게 개시를 했다. 개시를 하면서 어디로 갈 거냐고 하길래 아씨시로 간다고 해 친절한 직원이 표까지 끊어 주었다. 유레일 패스라고 완전 공짜인 줄 알았지만, 무슨 예약금 같은 것이 있어서 자잘 자잘하게 돈이 추가되긴 했다.(그래 봐야 3 유로긴 했다.)
배가 고파 뭘 먹을까 하다가 맥도날드가 있어서 유럽 맥도날드는 뭔가 다를까 하고 맥모닝 세트를 포장해갔다. 하지만 맥도날드는 전 세계가 맛이 똑같은가 보다. 그래도 아씨시로 가는 열차 창밖을 보면서 먹으니 기분 탓으로 더 맛있었던 것 같긴 했다. 하도 일찍 일어나서 졸릴 법도 한데 유럽의 기차 밖 풍경을 보고 있노라니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멍하니 보면서 갔던 것 같다.
멍 때리면서 보다 보니 아씨시에 도착했다. 처음엔 길을 헤맬까 걱정했지만, 정말 작은 마을이었고 길이 단순해 여유롭게 마을 쪽으로 올라갔다. 작은 마을인데도 그때 당시 유럽에 크고 작은 테러들이 있어서 그런지 아씨시로 올라가기 전에 군인들이 소지품 검사를 했다. 나야 뭐 들고 다니는 가방도 핸드백 수준으로 작아 바로 통과했다.(거기다 아시아인은 더 대충 검사하는 느낌이긴 했다.)
통과해서 올라가니 맨 처음 보이는 것이 수녀님들이 미사를 드리는 작은 성당이었다. 근데 이 성당이 정말 컴퓨터 바탕화면인 줄 알았다. 오죽했으면 여기서 찍은 바탕화면 사진이 하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준으로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거기다 길은 얼마나 또 이쁘던지, 어제 힘이 풀릴 정도로 걸어서 아팠던 종아리임에도 불구하고 힘이 났다. 다만 길을 잘못 들은 건지 아니면 수녀님들만 사는 마을이어서 그런지 길을 걷는 내내 사람을 거의 마주치지 못했다.
한참을 걷다 보니 벌써 2시 반쯤 시간이 넘어 배가 고파 그냥 눈에 보이는 아무 음식점이나 들어갔다. 수녀님 마을이라 그런지 직원도 더 친절했던 것 같다. 파스타 메뉴를 보고 있는데 그 유명한 트러플 파스타가 메뉴에 있어서 좀 비쌌지만 시켜서 먹었다. 진짜 트러플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트러플 향이 확실히 났고 첫날에 먹었던 파스타보다 훨씬 맛있었다. 이 가게 정도면 파스타의 본고장이 이탈리아라는 것을 알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먹고 식당을 나서니 갑자기 사람들 소리가 들렸다. 알고 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아씨시의 작은 광장에 다 모여있었나 보다. 광장 쪽으로 나오니 아까는 구름이 많아 살짝 흐렸는데 다시 해가 떠 슬슬 더워지기 시작했다. 마침 광장에 젤라또 가게가 있었다. 이탈리아에 오면 1일 1젤라또를 반드시 하라고 했기 때문에 망설임 없이 젤라또 가게에 가서 젤라또를 사 먹었다.
광장으로 다시 나와서 보니 저 위에 커다란 성곽이 하나 보였다. 저 성곽이 뭔지 궁금해 올라가기로 했다. 생각보다 높이 있는지 꽤 많이 위로 올라갔던 것 같다. 다행히 가는 길에는 사람이 어느 정도 있어서 외롭지는 않았다.
힘들게 올라가서 보니 생각보다 엄청 큰 요새였다. 전망대의 역할도 해 아씨시의 전망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었다. '힘들게 올라왔으니 그래도 한번 들어가 봐야지'라는 생각으로 입구를 찾았는데, 알고 보니 입장료를 달라고 했다. 이렇게 높은 곳에 있으면서 입장료까지 받아먹는다는 것이 너무 개고생 한 것 같아 돈을 내고 들어갈까 했지만, 점심도 비싼 것을 먹고 내가 사실 저기에 들어가도 뭔가를 느끼는 것은 없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 결국 들어가지는 않고 근처에서 구경만 하기로 했다.
바람도 쐬면서 도시를 몇 번 훑어본 다음 다시 내려갔다. 기차역까지 돌아가 다시 로마행 기차에 몸을 실었는데 이번엔 확실히 피곤했는지 로마에 도착할 때까지 단 한 번도 깨지 않았다.
항상 시차 적응에 실패해 오늘은 기필코 로마의 랜드마크 야경을 보리라 다짐했다. 마침 도착했을 때 이미 로마는 밤이었고 기차에서 잠도 푹 자서 쌩쌩했다. 떼르미니 역에서 한국사람도 만나 그분이랑 야경도 볼 겸 해서 콜로세움으로 갔다. 콜로세움 야경을 잘 보면서 밥을 먹을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한 가게에 앉게 되었다. 메뉴를 고르고 있는데 갑자기 한국분이 다른 데로 옮기자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우리 이미 자리도 잡고 야경도 잘 보이고 메뉴도 받았는데 무슨 문제 있냐고 하니까 이곳이 동성애자들이 운영하는 레인보우 레스토랑이라고 했다. 나는 그때 레인보우의 뜻을 처음 알았다. 그래서 남자 둘이 이 식당을 방문했기 때문에 뭔가 오해가 생길 것 같아서 이분이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가 이미 메뉴도 정했고 이 사람들이 우리한테 이상한 짓을 할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아 수고스러운 일 만들지 말고 그냥 여기서 먹자고 했다. 그분은 탐탁지 않아하셨지만 내가 '어차피 우리가 사귀는 사이가 아닌 건 분명한데 그냥 주변 신경 끄고 야경 보면서 밥이나 맛있게 먹어요'라고 말하면서 메뉴를 주문했다.
피자를 한 판 시켰는데 피자 가격이 정말 쌌다. 하나에 만원 정도밖에 안 하는데 내가 이때까지 먹었던 피자 중에 가장 맛있는 피자였다. 애초에 동성애자들이 운영한다고 해서 피해 갔었더라면 이 피자집의 대단한 맛도 못 느꼈을 거라 생각한다. 이 식당을 고른 것이 뷰도 좋으면서 맛까지 다잡은 1석2조로 완벽했다.
오늘이 로마의 마지막 날이었기 때문에 피자를 먹고 나서 다시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확실히 랜드마크인 데는 이유가 있는 것 같다. 낮에는 그 웅장함이 밤에는 아름다움으로 변했다. 시차 적응을 못해 야경을 계속 못 본 것이 너무 아쉬웠다. 콜로세움이 이렇게 멋있는데 천사의 성이나 다른 로마의 랜드마크들은 얼마나 더 아름다울지 두 눈으로 직접 보지 못해서 다음에 로마를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하면서 숙소로 돌아갔다.
이 블로그에 있는 모든 사진은 제가 직접 여행지 가서 찍은 것입니다. 사진을 이용하시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남겨주세요.
'여행기(해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첫 외국인과의 동행 (0) | 2020.05.15 |
---|---|
진짜 이탈리아 대통령? (0) | 2020.05.14 |
천국으로 가는 열쇠 (0) | 2020.05.12 |
이탈리아를 간 목적 (0) | 2020.05.11 |
그리스-로마 신화 (0) | 2020.05.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