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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불타는 고구마

by 메르쿠리오 2021. 6. 9.

중남미 여행 - 27일 차 ; 아르헨티나

 

 불타는 고구마를 보기 위해 새벽 1시 반까지 란쵸 그란데 숙소 앞에서 만나기로 해 10시 반쯤 잠들었지만 2시간 만에 알람 소리와 함께 기상할 수밖에 없었다. 엘 찬튼은 데이터도 거의 터지지 않아 숙소를 나오면 무조건 약속한 시간과 장소에 도착해야만 했다. 다행히 정말 작은 마을이라 길이 어렵진 않아 어제 만났던 한국분을 다시 만났다. 다른 분이 한 명 더 있어서 3명이서 '불타는 고구마'를 오르기로 했다.
 서로 인사는 하고 출발하려는데, 세명 다 길을 모르는 상태였다. 그래도 한 분이 블로그를 봤는데 길이 어렵지 않고 그냥 나져있는 대로 따라가면 된다고 해 일단은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멍청하게 란쵸 그란데 옆길로 출발했다. 란쵸 그란데를 나오면 바로 왼쪽에 대놓고 피츠로이 가는 길이라고 적혀있는데...

입구에 있는걸 찾지 못해 2시간을 뺑뺑이 돌아 결국 원점에서 다시 출발하게 되었다. 답답한 내 자신이 화가 났다.

 가본적이 없으니 길을 잘못 들었을 거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치 못한 채 등산을 시작했다. 차라리 이곳에서 사람이라도 못 만났으면 아, 우리가 길을 잘못 들었구나라고 생각이라도 할 텐데 이곳으로 다니는 사람도 꽤나 보였다. 그래서 당연하게 계속해서 길을 올랐다. 보이는 길을 따라 계속 가는데 한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아까 맨 처음 만났던 란초 그란데였다. 이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아 지도를 보며 위치를 확인해보았다. 한 시간을 넘게 뺑뺑 돌아 결국 란초 그란데에 다시 도착하게 되었다. 결국 2시간이 지나 제대로 된 입구에 도착했지만 지금부터 출발해도 이미 봉우리 아래까지 가는 데는 무리가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타협해 호수 앞 전망대에서 피츠로이의 불타는 고구마를 보기로 했다.

달 덕분에 이렇게 길이 훤한데도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 결국 봉우리 아래는 포기하고 바로 호수로 갔다.

 확실히 제대로 된 등산코스로 오니 길이 너무 잘 표시되어있었다. 봉우리 아래에서 호수로 난이도를 확 낮추니 생각보다 더 일찍 도착했다. 파타고니아에서 파타고니아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다고 반팔까지 입고와 기다리는데 너무 추워 1분 1초가 견디기 힘들었다. 그래도 우리만 있는게 아닌 다른 외국인도 여기서 기다리는 걸 보니 뷰 맛집은 확실하다고 느껴 참고 기다렸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드디어 하늘이 점점 밝아짐을 느꼈다. 추위에 벌벌 떨며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달이 지고 해가 뜨면서 봉우리가 태양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이 불타는 고구마라고 부르는지 드디어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맹추위에도 불타는 고구마를 위해 파타고니아 옷을 입고 파타고니아의 피츠로이를 보는 사진을 포기할 수 없었다.

 길을 헤맨 탓에 더 가까이서 불타는 고구마를 보진 못했지만, 호수에서 보는 피츠로이의 장점도 있었다.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그래도 호수에 비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길을 해메길 잘했다며(?) 서로 호수의 아름다움을 칭찬하다 보니 짧은 시간 동안만 볼 수 있는 불타는 고구마의 모습이 끝나가 하산하기로 했다.

바람만 좀 약하게 불었다면, 예전 스페인 세비야에서 본 것처럼 호수에 약하게나마 비치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산 위에서 엘 찬튼의 모습을 보니 그랜드캐년의 재림을 떠올렸다. 하산하는 것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몇 걸음 내려가면 사진 셔터를 누르기 바빠 예상보다 하산하는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남미가 대자연의 성지라는 것을 깜빡 잊고 있었다. 판타지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숲속 마을같았다.

 엘 칼라파테로 돌아가는 버스를 예매한 뒤 마트에 들려 간단하게 빵을 사 와 먹었다. 2시간만 자고 등산을 해서 그런지 버스에서 정신없이 잠을 잤다. 덕분에 엘 칼라파테에 도착하니 정말 개운했다.

 엘 칼라파테에 도착했는데 버스 정류장에서 우유니에서 1박2일 투어를 같이 진행했던 한 친구를 만났다. 오늘 그 친구도 여기 있을 거라고 해 저녁을 같이 먹기로 약속하고 시내에 저렴한 숙소를 예약한 후 들어갔다. 숙소 아주머니가 정말 재밌었던 게, 무슨 말끝마다 뻬르뻭또(Perfecto)를 외치는 상황이 너무 웃겼다.

 짐을 풀고있는데 한 덴마크 친구가 내일 모레노 빙하를 가냐고 물었다. 그래서 간다고 했는데, 아쉽게도 시간대가 달라 같이 갈 수는 없었다. 그래서 인사를 하고 저녁을 먹기 전까지 시내를 좀 둘러보기로 했다. 

 한 아이스크림집에 들렀는데 꽤 유명한 집인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만큼 아이스크림 종류도 많았는데, 그중에서도 내 눈에 띈 것은 다름 아닌 빙하 맛 아이스크림이었다. 2가지 맛으로 하나는 크림치즈 하나는 빙하 맛을 골랐는데, 사실 특별한 맛은 없었다. 그래도 오직 엘 칼라파테에서만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기에 맛보다는 유니크함에 의미를 두었다.

관광지 치곤 나름 합리적인 가격에 빙하맛 아이스크림을 맛 볼 수 있다. 물론 이게 빙하맛인지는 모른다.

 시간이 되어 식당 앞으로 갔는데, 동행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연락해보니 숙소에서 만난 일본인 한 분을 데려온다고 했다. 사업차 아르헨티나를 방문하신 분이였는데, 아쉽게도 일본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영어로 대화했는데 나이가 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잘 맞았다. 마지막엔 그 아저씨가 일본에선 나이 많은 사람이 계산하는 거라며 값을 다 내줬다. 어쩐지 와인부터 스테이크 등 모든 메뉴를 다 직접 고르셨는데, 처음엔 그냥 음식에 대해 확고하신 분인가 했는데 다 계산하실걸 생각하고 오셨나 보다. 덕분에 정말 맛있는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다음에 일본으로 놀러 가면 그 아저씨를 만나기로 약속하고 저녁 약속을 끝으로 숙소로 돌아가 내일 있을 바쁜 스케쥴을 소화하기 위해 일찍 잠에 들었다.

에피타이저부터 메인 디쉬, 와인에 핑거푸드와 디저트까지. 풀 코스로 대접받아 나중엔 반드시 일본에 가면 인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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