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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국내)

강원도 속 유럽

by 메르쿠리오 2021. 10. 26.

서유럽의 매력을 모아놓은 강원도를 향해

 

 어렸을 땐 가족과 국내여행을 가는 게 정말 귀찮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선 가족과 여행을 떠나고 싶었다. 물가가 싼 동남아 쪽으로 노선을 돌리고 싶었지만, 현재 코로나라는 엄청난 장벽 때문에 인스타그램 피드로 열심히 국내 여행 정보를 찾고 있었다. 그중에서 바로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설악산 뷰가 보이는 호텔이었다.

 호텔에 관련하여 더 찾아보니, 심지어 내부는 영국풍으로 꾸며 해외여행 느낌도 충분히 낼 수 있을 것 같아 더 이상 고민 않고 바로 예약을 진행했다. 거기다 저녁은 미식의 도시 페루에서 먹은 세비체까지,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있었다.

페루 리마에서 먹었던 세비체. 물론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은거지만, 이러한 느낌의 세비체를 원했다.

 그렇게 예약을 마치고 2021년 6월 5일, 아침 일찍 강원도로 나갔다. 열심히 달려 홍천에 있는 화양강 휴게소에 들러 라면으로 아침을 때웠다. 차분한 화양강을 보며 아침을 먹으니 피곤했던 심신이 조금은 나아지는 것 같았다.

휴게소 뷰가 정말 좋았다. 매콤한 라면을 먹으면서 초록초록한 배경을 보니 눈의 피로가 좀 풀리는듯 했다.

 밥을 먹고 설악산 안으로 더 달리니 감탄이 나오는 암벽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가 산이 많아 관심이 없었던 건진 몰라도 이렇게 보니 정말 남미나 해외에서 보는 산만큼 멋있어 보였다. 근처에 이승만 전 대통령 별장이 있어 잠깐 정차해서 들렀는데, 별장에서 밖을 바라보는 곳을 보니 왜 이곳에 별장을 지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아찔하게 깎여진 암벽을 보게 된다면, 전 대통령이 아닌 누구라도 이 곳에 별장을 짓지 않았을까.

 초여름이라고 생각해 반팔과 반바지에 간단히 걸칠 아우터만 챙겨 왔는데, 아빠가 이왕 가는 거 한계령을 지나서 가자고 해 한계령에서 잠깐 정차했다. 그런데 6월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기온과 바람이 엄청나게 불었다. 게다가 새벽이라 그런지 안개도 너무 껴 한계령의 전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결국 10분도 버티지 못하고 차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안개만 없었으면 정말 화려했을 것 같은 한계령이였지만, 아쉽게도 너무 춥고 금방 날이 걷힐 것 같진 않아보였다.

 호텔 체크인이 오후 3시이다 보니 설악산을 지나 속초로 먼저 갔다. 한계령에서 봤을 땐 흐린 날씨여서 걱정했는데,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완벽한 날씨를 보여주었다.

드디어 파란 하늘을 보며 드라이브를 시작했다. 여행에서 날씨는 정말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근 1년 만에 다시 바다를 보게 되다니, 잔잔히 치는 파도 소리마저 악기처럼 기분이 좋았다. 코시국임에도 사람들은 꽤 많이 보였다. 맘 같아선 마스크를 벗고 바다에서 놀고 싶었지만, 설악산에 온 김에 잠깐 들리는 거라 그냥 파도를 따라 산책만 하기로 했다. 물론 정말 오랜만이라 바다 산책만 해도 행복했다.

사실 속초에 왔을 때 숙소를 바다에 잡는게 맞는다고 생각했다. 바다와 산 둘중에 고르라면 무조건 바다이기에...

 야식으로 먹을 속초의 명물인 '만석 닭강정'과 음료를 사서 호텔로 돌아갔다. 입구에서부터 영국의 상징인 2층 버스가 보이고, 호텔 로비 입구에는 호두까끼 인형이 우리를 반겨주고 있었다. 곳곳에 해리포터 느낌도 나면서 영국의 느낌을 잘 살린 로비였다.

여행 권태기를 깨주었던 영국이 정말 많이 생각났다. 아쉽게도 코로나때문에 2층버스 내부는 들어갈 수 없었다.

 체크인을 하고 숙소로 들어갔는데 생각보다 더 낡긴 했었다. 문이 삐그덕거리고 방음이 거의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테라스 뷰만 보면 어느 정도 마음이 사그라들 정도로 설악산이 너무 잘 보였다. 단 하나 아쉬운 건 9층 애비로드에서 보는 가장 하이라이트인 설악산 뷰를 그 당시에 공사 중이어서 볼 수 없었다.

룸과 연결된 테라스 문만 열면 이런 초록색 뷰가 보이니 내일 아침이 기대됐다.

 호텔 바로 앞에 설악산 국립공원이 있어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기로 했다. 사람은 많았지만 다행히 원하는 시간대에 예약이 가능해 예약을 걸어놓고 국립공원 앞 식당에서 간단하게 밥을 먹었다. 관광지라 맛은 기대하지 않아 요기를 채울 정도로만 먹었다.

가 보기 전에는 비싸다고 생각했던 입장료와 케이블카가 직접 경험해 보니 비싼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산에서만큼은 진짜 우리나라가 접근성도 좋고 아름답다는 것을 체감했다. 굳이 케이블카를 오르지 않고 국립공원에서 보는 것 자체만으로도 작은 마추픽추에 온 듯한 느낌이 들었다. 거기에 한옥(카페나 음식점이겠지만)까지 더해지니 정말 멋스러운 풍경을 연출했다.

설악산 국립공원에는 외국인들도 상당히 많았다. 대도시인 서울에서 2시간만에 보는 스위스라니.

 코로나임에도 불구하고 케이블카는 빈자리 없이 사람들을 꽉꽉 채워서 올라갔다. 생각보다 빨라서 나름 스릴(?)도 있었다. 좀 더 일찍 올라왔다면 폭포도 보고 그랬을 텐데, 올라오자마자 바람이 쎄게 불어 케이블카 운행이 중단될 수 있다는 경고를 계속 방송해 권금성에 오랫동안 있을 순 없었다. 그래도 맑은 날씨에 권금성에서 보는 산악 뷰는 예술 그 자체였다.

여름에 스위스를 가면 이런느낌일까, 오랜만에 다시보는 대자연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빠르게 30분 정도만 구경한 후 케이블카가 중단되기 전에 재빨리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엔 우리가 묵는 호텔도 보였다. 이렇게 보니 설악산이 주목적이면 위치는 정말 최상인 것 같았다.

확실히 설악 하나만 보고 온다면 접근성은 정말 최고인 듯 했다. 계곡이 말라있는게 조금 안타까웠다.

 대신 크나큰 단점이 하나 있다면, 호텔이 산 중턱에 있다 보니 차를 끌고 나가는 게 아닌 이상 호텔 밖으로 나가도 산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호텔에서 쉬다가 동생과 호텔 구경을 하기로 했다. 그래도 컨셉이 있는 호텔이다 보니 층마다 각 컨셉에 맞게 꾸며놓아 객층을 한층 한층 둘러보았다. 옛날 명예의 전당처럼 꾸며진 걸 보니 새삼 호텔이 많이 낡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체감했다.

배우, 가수 등 객층마다 명예의전당처럼 전시되어 있어 구경하는 맛이 있었다.

 룸으로 돌아와 테라스에서 하염없이 설악산을 바라보다 세비체가 포함된 디너 예약시간이 다 되어 내려갔다. 사실 이 호텔에 오면 차를 끌고 멀리 나가지 않는 이상 저녁 선택지는 호텔밖에 없었다. 그래도 세비체를 기대했는데, 내가 생각한 페루에서의 와일드한 세비체가 아닌 누가 봐도 호텔에서 나오는 정교하게 깎여진 세비체였다. 거기다 가격에 비해 양도 너무 쥐꼬리만 해서 실망에 실망을 거듭했다. 그 외에 다른 코스요리들은 무난했지만, 세비체 하나 보고 디너를 예약했기에 더 아쉽다는 느낌만 강하게 들뿐이었다.

세비체는 숟가락으로 퍽퍽 퍼먹는 맛인데, 플레이팅에 너무 신경을 쓴건지 가성비는 최악이였다.

 밥을 먹고 밤 산책을 나섰다. 아마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야간 바베큐와 같은 이벤트를 진행했을 것 같은데, 아쉽게도 파티 가든은 불이 꺼져있었다. 거기다 호텔 말고는 어두컴컴해 구경할 수 있는 것도 많이 없고 무엇보다 산모기가 너무 드세 일찍 들어가 점심에 사 온 만석 닭강정을 야식으로 먹으며 일찍 잠에 들었다.

마치 타코벨이 생각나는 길목과 덩그러니 불만 켜져있는 런던의 상징 '2층버스'. 언제 다시 런던을 갈 수 있을까...

 지금 다니는 회사도 아침 8시에 출근하지만, 언제나 아침에 일어나는 건 힘들다. 특히 휴일에는. 감긴 눈을 부여잡고 테라스 밖으로 나갔는데, 밖을 보는 순간 피로함이 싹 날아갔다. 덕분에 끝까지 좋은 기억을 가지고 1박 2일의 강원도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솔직히 이거 하나로 숙소 돈값은 다 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음번엔 꼭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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