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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악마의 목구멍

by 메르쿠리오 2021. 7. 19.

중남미 여행 - 35일 차 ; 아르헨티나, 브라질

 

 잠깐 졸다 보니 벌써 이과수 공항에 도착했다. 이미 해는 뜬 상태였기 때문에 오랜만에 밍기적대지 않고 바로 짐을 챙겨 우버를 타고 이과수 국립공원으로 갔다. 아침 일찍 왔는데도 역시 세계적인 관광지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았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인 건 너무 큰 폭포여서 그런지 우리나라보다 더 습한 날씨에 입구에서부터 이미 미친듯한 찜통더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빠르게 짐을 맡긴 뒤 표를 구매하고 더 사람이 몰리기 전에 바로 입장했다. 

암환전을 하지 못해 표를 정말 비싸게 구입했다. 정가 환율에 카드 수수료까지...

 한 블로그에서 보트투어를 하려면 국립공원 오픈과 동시에 가야 겨우겨우 투어를 예약할 수 있다고 했는데, 의외로 오픈 시간이 좀 지나고 갔는데도 자리는 널널했다. 그래서 원래 보트 투어를 할 생각은 없었는데 바로 보트 투어를 예매한 뒤 투어 장소로 향했다. 보트 투어 하기 전 버스를 타고 투어 장소로 이동하는데, 뭔가 아마존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나 가는 길도 재밌었다.

보트투어 가는길이 생각보다 멀었다. 그래도 트럭을 타고 정글 속을 파헤치는 것 또한 재미있었다.

 난 악마의목구멍이 얼마나 큰지 모르고 보트 투어를 하면 목구멍에 들어가서 한번 물폭탄을 맞겠거니 생각했는데, 악마의 목구멍을 가면 죽는단다. 그래서 당연히도 거기는 가지 않고 그 근처의 다른 물줄기가 쌘 폭포 두 군데 정도를 가 물벼락을 한번 맞게 해 줬다. 하필 렌즈를 끼고 와 물벼락에 눈깔이 뒤집어지는 줄 알았다.

꽤나 빠른 속도로 보트를 타며 완벽한 날씨와 비현실적인 전경, 물폭탄 세례까지... 정말 자연의 위대함을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물벼락을 맞고 돌아오는데 진짜 날이 너무 더워서 금방 말라버렸다. 투어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한국분이 인사를 걸었다. 자기도 금방 보트 투어를 마치고 바로 악마의 목구멍으로 가려고 하는데 가냐고 물었다. 나도 사실 이과수에서 악마의 목구멍 얘기만 들었기 때문에 같이 가기로 했다. 

 그 사람은 이과수 폭포에 정말 관심이 많아 여러 얘기를 들을 수 있었는데, 운이 좋게도 어제 비가 내려 오늘은 좀 유량이 많다고 했다. 다리를 건너 가는길에서부터 점점 느껴지기 시작했는데, 정말 앞에 도착하니 소름이 돋을 정도의 엄청난 폭포가 흘러 내리고 있었다. 괜히 악마의 목구멍이라고 불리는게 아닌 것이, 정말 빨려 들어갈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자연의 웅장함에 압도되어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 보였다.

세계 3대 폭포 중 가장 유량이 많은걸로 알려져있는 '이과수 폭포'. 계속 쳐다보는것만으로도 목구멍에 빨려들어갈 것만 같았다. 

 정말 유량이 많으면 사람들의 말소리 자체가 안 들린다고 하는데, 아쉽게도 어제 말고는 비가 잘 안 와서 엄청 많은 편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이분은 며칠 더 폭포에 머물러 구경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악마의 목구멍을 나와 기차를 타고 다른 장소로 이동했다. 남미에선 신기하게도 다들 동선이 비슷해서 그런지 부에노스에서 만난 분을 기차에서 만났다. 아쉽게도 이과수 내에서 동선은 겹치지 않아 Buen viaje(즐거운 여행 되세요)만 전하고 보이는 길을 따라나섰다.

올라올 땐 왜 기차를 몰랐는지, 찜통 더위에 그나마 편하게 이동할 수 있었다.

 어느 트레일인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나와있는 길을 따라가다 보니 정말 요정이 살 것만 같은 곳이 보였다. 아름다운 폭포에 이끌려 더 가까이 가니 악마의 목구멍에 비하면 새발의 피인 폭포지만 그래도 물줄기가 꽤나 강했다. 그래도 날씨가 미친 듯이 더웠기에 물을 맞고 싶다고 생각할 줄 누가 알았을까, 시원한 폭포 비를 맞으며 구경을 좀 더 하다 다시 돌아갔다.

동화 작가들은 이런곳에서 영감을 받지 않을까 싶었다. 정말 당장 요정이 불쑥 나와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아름다움이였다.

 이과수에서 리우로 넘어가는 비행기 예약을 했는데, 지네 맘대로 시간표를 바꿔버렸다. 그래서 이과수 구경을 마치고 이과수에 있는 매점에서 브라질 이과수로 어떻게 갈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한 한국인 친구가 왔다. 자기도 지금 브라질 이과수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같이 가자고 했다. 

 국립공원을 나와 짐을 찾고 버스정류장으로 갔다. 거기서 택시를 타고 브라질 이과수로 넘어갈 사람을 구해보려고 했지만 1시간 동안 단 한 명도 브라질 이과수를 택시를 타고 넘어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급한 대로 버스를 타고 브라질 이과수로 넘어가기로 했다. 

남미에선 영어가 아닌 스페인어를 준비해야 하는 이유. 심지어 We can speak English도 아니다.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로 국경을 넘는 거라 안 좋은 느낌을 직감했다. 아르헨티나에서 여권을 새로 발급받았기 때문에 아르헨티나 입국 도장이 없어서 출국심사대에서 나를 이상한 눈초리로 보기 시작했다. 상황설명을 하는 바람에 시간이 좀 질질 끌렸지만 다행히 나올 수 있었다. 근데 문제는 이다음이었다. 내가 탄 버스가 이미 출발을 해버렸다. 같이 있었던 그 친구한테 연락해보니 지금 브라질 입국심사대에 있다고 한다. 아무리 그래도 승객 확인도 하지 않고 출발해버리다니, 그 친구도 버스 기사에게 말했었지만 약간 어쩌라는 듯이 출발해버렸다고 한다.

 볼리비아 코파카바나에 갔을 때가 생각이 나면서 머리가 하얘졌다. 일단 보이는 사람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그러더니 저기 옆라인에 가면 택시 정류장이 있으니 한번 가보라고 알려주었다. 정말 운 좋게도 택시 한 대가 서 있었다. 그런데 브라질 택시였다. 이미 아르헨티나 페소도 다 써버린 상태여서 어떡하지... 일단 무작정 사정을 설명했다. 처음에는 안된다고 해서 일단 알았다고 하고 정말 다급한 표정으로 서성이더니 이내 택시기사님이 태워주신다고 했다. 정말 너무 몸 둘 바를 몰라 유일하게 아는 포르투갈어인 obrigado(감사합니다)만 연발한 뒤 얼마 있지도 않은 아르헨티나 페소를 드리려고 했지만 그냥 공짜로 도와주신다고 해 몇 번을 더 감사인사를 하고 브라질 입국심사대로 갔다. 다행히 거기서 버스가 꽤 오랜 시간 정차해 그 친구와 내 짐을 다시 버스에서 찾을 수 있었다. 

 무사히 브라질 이과수 마을인 '포즈 두 이과수'에 도착했다. 어째 어두워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르헨티나 이과수보다 더 더운 느낌이었다. 예약한 숙소에 짐을 맡긴 뒤 환전과 저녁부터 먹으러 근처 대형마트를 갔다. 환율도 구리고 특히 아르헨티나 페소는 정말 절반 가격에 후려쳐줬지만, 어차피 이젠 못쓰기 때문에 환전을 하고 마트에서 간단하게 뷔페식으로 저녁을 먹었다. 

그람수로 측정해 접시당 가격을 매겨주는 뷔페였다.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좀 더 먹을걸...

 밥을 먹고 앞에 맥도날드가 있어 날도 더워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먹기로 했다. 근데 맥도날드 직원이 갑자기 오빠라고 말했다.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는데 오빠 사랑해요 이러면서 우리를 보더니 단숨에 한국인이라는 걸 알았다고 했다. 정말 BTS 영향력이 대단하긴 한가보다. 혹시나 해서 잔돈이 남아 아이스크림 가격을 깎아줄 수 있냐고 물었더니 맥도날드인데도 불구하고 깎아준단다. BTS 덕분에(?) 아이스크림도 싸게 먹었다. 

 브라질 이과수 비행기가 새벽 6시로 지네 맘대로 바꾼 뒤 통보당해 일찍 숙소로 들어갔다.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하필 우리 방 에어컨이 고장 났는지 찜통이었다. 그래도 피곤해서 그런지 침대에 누우니 귀신같이 잠이 들었다.

 


이 블로그에 있는 모든 사진은 제가 직접 여행지 가서 찍은 것입니다. 사진을 이용하시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남겨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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