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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절대 겪어선 안될 일

by 메르쿠리오 2021. 6. 19.

중남미 여행 - 29일 차 ; 아르헨티나

 

 바람에 문이 자꾸 툭 툭 거리는 소리가 나 깨서 테라스로 향하는 문을 열었는데, 숙소를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가 많아 시야가 좀 가리긴 했지만, 커피 한잔을 마시며 골목을 들여다 보기에는 제격이였다. 피톤치드를 좀 마신 다음 어제 그 친구와 만나기 위해 씻을 준비를 했다.

1박에 8천원짜리 호스텔에서 이런 뷰는 생각도 못했는데, 기대 이상이였다.

 오늘 보기로 한 친구가 점심을 먹고 온다고 해 나도 시내로 나가 점심을 먹기로 했다. 내 숙소가 우리나라의 가로수길 같은 느낌이여서 꽤나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들이 많이 보였다. 갑자기 햄버거가 끌려 괜찮아 보이는 햄버거 집에 들어가 햄버거를 시켜 먹었다. 역시나 질 좋은 고기로 유명한 곳이라 그런지 패티가 정말 맛있었다. 아르헨티나에서 살면 한달에 5키로는 거뜬하게 찌울 수 있을것만 같았다.

숙소 위치가 우리나라의 가로수길 같은 곳이여서 깔끔하고 세련되보이는 맛집들이 많아 보였다.

 수제버거를 다 먹고 난 뒤 그 친구랑 팔레르모 역에서 만났다. 만나기로 약속만 했지 딱히 계획한 것은 없어 그 친구와 항구쪽을 향해 천천히 걸어가보기로 했다. 중간 중간 작은 공원들이 보였는데 날이 좋아 공원을 걷기에는 더할나위 없이 완벽했다. 일본 공원이라는 이름을 가진 공원도 보여 들어갈까 했는데, 여기는 입장료를 추가로 받는다고 해 공원에 돈을 써서 구경할정도는 아니였기 때문에 돌아갔다. 

이런날에 나도 스카이다이빙을 했어야 했는데, 급하게 내일 스카이다이빙 예약을 신청했다.

 거의 끝자락에 왔는지 저 멀리 배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선 사라진 까르푸 매장도 보여 바다를 보며 맥주나 한잔 들이키기 위해 매장에 들려 과자랑 맥주를 몇개 사서 항구로 갔다. 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가 항구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왜 항구 얘기가 안나오는지 몰랐었는데, 도착해서 보니 알게 되었다. 일단 물이 정말 더럽고, 노숙자같은 이상한 사람들이 많아 미관을 정말 망쳤다. 그래서 똥물이 보이는 항구를 안주삼아 빠르게 맥주를 마시고 어디를 갈까 하다가 여기서 멀지 않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인 '엘 아테네오'를 가기로 했다.

 걸어갈까 교통수단을 이용할까 고민하다가, 걸어서도 한 30분이면 충분히 갈 것 같아 그 친구와 걸어가기로 했다. 일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허름해 보이는 곳을 지나 굴다리만 건너면 되는 직진코스를 선택해 가는데, 느낌은 좋지 않았지만 항구 근처이기 때문에 빈민촌일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저 멀리서 이상한 애들이 말을 걸었을 때 눈치를 채고 도망갔어야 했는데... 

구글맵에 표시된 'BARRIO MUGICA'. 위성으로만 봐도 위험천만해 보이는 구역인데 왜 그때는 몰랐을까...

 여하튼 굴다리에 도착한 순간 자전거를 타고 온 4명이 갑자기 우리를 둘러싸더니 어깨를 잡았다. 그러더니 바로 가방에 손을 댄 후 바로 가방을 뺏으려고 했다. 하필 렌즈도 끼고 있었는데 그 강도가 얼굴을 가격해 렌즈한쪽이 빠지고,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지만 가방끈을 끝까지 부여잡고 있었다. 도저히 안되겠는지 강도가 나중엔 칼을 꺼내 가방끈을 짤랐는데, 하필 내 손가락이 같이 껴있어서 같이 베여 나갔다. 그런데 워낙 흥분상태라 그런지 아픈건 모르고 쫒아갔는데, 중간에 멈출 수 밖에 없었다. 굴다리 아래로 강도 무리가 우글우글 보여 본능적으로 저기를 가면 죽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돌아왔을 땐 친구도 가방을 뺏긴 상태였다. 유유히 도망가는데, 잡을 수가 없었다. 그나마 천만 다행인건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어놨었고, 달러가 든 지갑은 카드목걸이로 해놓아서 큰 돈을 잃지는 않았다.

 정신 없는 상태에서 그 치안이 좋지 않은 곳을 빠져나가려고 하는데, 빈민촌의 꼬마 아이들이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선글라스나 모자 등을 주워줬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빈민촌 애들한테 강도짓을 당하고 빈민촌 애들이 도와주었다. 아무리 빈민촌 애들이라고 해도 그 사람이 나쁜거지 빈민촌 애들이 전부 다 나쁜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한명은 경찰이 왔을 때 경찰이 스페인어밖에 되지 않아 영어로 통역도 도와주었다. 

 물론 경찰이 사건이 터졌을 때 바로 왔으면 좋았겠지만, 사건이 끝난 직후 바로 와 수습은 되었다. 경찰서에서 몇시간을 기다렸는지 모르겠다. 말도 안통하는데 일처리마저 답답해 한국사람으로선 정말 참기 힘들었다. 

뭔가 열심히 하긴 하는데, 결론이 나질 않았다. 안그래도 강도를 만나 상태가 좋지 않은데 짜증만 더 늘어갔다.

 그래도 경찰서에 와 긴장이 좀 풀렸는지 드디어 살점이 나간 손가락이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에 같이 강도를 만난 그 친구가 사건이 터진 직후에 내 얼굴을 봤을 땐 피투성이라고 했는데, 이제와서 실감이 좀 났다. 

긴장이 풀린 이후부턴 정말 손가락이 너무 아팠다. 급하게 경찰이 소독약과 함께 휴지로 둘러줄 뿐이였다.

 끝이 보이는지 드디어 폴리스 레포트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 뒤에 엠뷸런스가 와 내 손가락을 치료해주러 왔다. 당연히 엠뷸런스 안에서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의사가 나오더니 손가락에 소독약을 붓더니 벅벅 문질렀다. 봉합이라도 해주지, 살점이 떨어져나갈것만 같아 이를 꽉 물고 있는데 옆에서 경찰이 자꾸 유어 스트롱을 외치길래 정말 한대 쳐주고싶었다.

 경찰이 숙소까지 데려다 준다고 해 경찰차에 탔다. 근데 우리는 피해자인데 범죄자 좌석에 앉혔다. 처음 타봐서 몰랐는데, 범죄자들이 앉는 좌석은 의자 쿠션도 없고 상당히 불편했다. 심지어 안에서는 문을 열지도 못하게 되어 있었다. 그래도 숙소까지 데려다주는게 어디야 생각하고 갔다.

이미 도착했을 땐 해가 완전히 진 9시였다. 내일 예약한 스카이다이빙도 덕분에 못하게 됐다. 그래도 몸 무사한게 어디인가.

 숙소에서 다른 친구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데, 점심도 못먹고 저녁도 못먹어 일단 밥부터 사서 왔다. 다른 친구들이 와서 강도를 만난 얘기를 하는데, 너무 분해 이건 도저히 일찍 잘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근처 호프집으로 가 분노를 삭혔다. 거기서 그 친구가 강도랑 몸싸움을 하다가 자기도 시계를 뺏었다고 얘기해 주었다. 이 친구는 가방에 휴대폰도 있어서 나보다 더 큰 지출이 있었지만, 그래도 강도에게서 시계를 빼앗은 평생의 안주거리를 얻었다.

강도에게서 뺏은 시계. 아마 이것도 그 강도는 누군가의 시계를 훔친것이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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