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여행 - 45일 차 ; 멕시코
이미 짐도 다 싸고 더 이상 여행할 기운이 없어 하루 종일 호텔에서 잠만 자려고 했는데, 블라인드 치는 법을 몰라 아침부터 거침없이 들어오는 햇살 덕에 일찍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어제 항공권 캔슬로 인해 호텔 및 공항 식권을 줘서 아침이나 먹으러 나갔다. 식당에 한국인들이 많이 보이는 걸 보니 나만 캔슬당한 건 아니구나 싶기도 했다.
도저히 피곤함에 견딜수가 없어 리모컨을 이것저것 만졌더니 블라인드가 쳐졌다. 다시 고대로 한숨을 더 자니 점심때쯤 일어나 다시 호텔 레스토랑으로 가 조식과 똑같은 점심을 먹었다. 도저히 이 지루함을 견딜 수 없어 점심을 먹고 있는 한 한국분에게 말을 걸어 100페소만 팔아달라고 해 계좌로 6천 원을 드리고 100페소를 받았다. 멕시코에서 100페소로 하루를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일단 다시 호텔 침대에 누워 고민을 좀 더 해보기로 했다. 지하철은 한번 탈 때 5페소, 두 번 이용하면 10페소였기 때문에 90페소로 마지막 여행을 해야 했다. 어디를 갈까 하다가 과달라하라를 못 갔기에 이름이 비슷한 과달루페 성당이 보여 중남미 여행의 마지막 종착지로 과달루페 대성당을 가기로 했다. 성당에 큰 관심이 없어서 몰랐는데,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라고 해서 엄청 유명한 성당이었다.
호텔 밖을 나왔는데 어젯밤 택시를 타고 왔을 땐 몰랐으나 숙소 근방이 치안이 좋아 보이진 않았다. 그래도 지하철역이 멀지 않은 곳에 있고 어차피 마지막 날이라 털릴 것도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천천히 지하철역까지 걸어갔다. 멕시코 지하철은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되어 있어 앞에 아저씨(인지 할아버지인지는 모르겠지만)가 말을 걸어왔다. 처음에 한국이냐 일본이냐 물어보길래 꼬레아노라고 대답했다. 그냥 인사해주는 아저씨인가 보다 하는데 나중에 가방에서 마약으로 추정되는 물체를 꺼내더니 너 이거 뭔지 알지라며 계속 물어봤다. 빨리 피해야 내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아 미리 내려 다음 지하철을 탔다. 브라질에서도 못 느꼈던 지하철 치안을 마지막 날 멕시코에서 느끼다니... 그래도 그 이후론 평이하게 과달루페 역까지 갈 수 있었다.
성당을 가기 전 앞의 맥도날드에서 아이스크림을 봐 버렸다. 그냥 지나칠 수 없어 10페소를 투자해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먹고 천천히 성당 쪽으로 걸어갔다.
성당을 처음 마주했을 땐 성당보다 중동 쪽의 궁전이나 인도의 타지마할 같은 느낌이었다. 뭔가 게임 배경화면으로 나올법한 느낌이 들기도 했다. 성당 내부에는 세계 3대 성모 발현지답게 기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보였다.
큰 규모답게 정원도 있었다. 마지막 날 온 것이 다행이라고 느낀 게, 여유밖에 남지 않아 산책하면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는데 기대도 안 했던 곳인데도 정말 좋았다. 계단 너머로 보이는 성당과 각종 마리아상과 분수 등, 힐링이란 말이 정말 어울리는 곳이었다.
지도를 보니 운 좋게도 바로 옆에 시장이 있었다. 남은 돈으로 이 시장에서 무엇을 살 수 있을까 천천히 둘러보다가 아르헨티나에서 샀던 것처럼 멕시코 티셔츠를 하나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줌마에게 내일 한국 가서 돈이 없다고 사정사정해 멕시코가 적힌 티셔츠 하나를 겨우 구매했다.
이왕 나온 김에 마지막까지 멕시코를 담자는 마음으로 성당 밖을 나와 천천히 걸어갔다. 한참을 걸으니 학교인지 어딘지 모를 넓은 공터가 있는 곳에 왔는데, 이곳에서 와이파이가 정말 잘 터졌다. 강아지를 산책하는 사람들도 많이 보이고 해 안전하다고 느껴 여기서 가족에게 연락도 할 겸 쉬어갔다. 뭔가 유적과 관련이 있어 보였는데, 건물들은 다 입장을 마감했는지 들어갈 수는 없어서 아쉬웠다.
지친 상태에서 더 이상은 걸어가긴 무리라고 판단해 지하철을 타고 숙소로 돌아갔다. 비행기는 다음날이지만 밤 1시 비행기였기에, 샤워를 하고 짐을 챙긴 다음 공항으로 이동했다. 아에로멕시코에서 준 티켓이 공항 레스토랑에서도 사용이 가능해 저녁은 공항 레스토랑을 이용하기 위해 사용이 가능한 곳을 찾았다. 스테이크를 시켰는데 아르헨티나에서 먹었던 기대감 때문이었을까, 고기가 얇아도 너무 얇았다. 그래도 공짜로 먹는 거라 맥주 한병도 시켜서 마지막 만찬을 즐겼다.
공항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일본을 거쳐 진짜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 비행기에 탑승하자, 마스크를 쓴 승무원들이 코로나 얘기를 하며 마스크를 써달라고 안내를 해 주었다. 원래 기념품(?)으로 산 멕시코산 마스크를 뜯어 2겹이나 겹쳐 쓰고 자리에 앉아 일본에 무사히 도착하기만을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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