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기(해외)

지상 최대의 축제

by 메르쿠리오 2021. 7. 31.

중남미 여행 - 38일 차 ; 브라질

 

 이 하나 때문에 내 중남미 여행 모든 스케쥴을 통째로 바꾸고 새로 다시 계획해야 했던, 페스티벌의 날이 왔다. 아침부터 숙소 주인이 테이블에 카니발 소품을 준비해두었다. 카니발에 갈 때 쓸까 생각했지만, 축제인 만큼 더 많은 인파가 몰려 안전에 더 유의해야 할 것 같아 손이 좀 더 자유로울 필요가 있어 가면을 들고나가진 않았다.

집주인이 카니발 갈때 쓰라고 온갖 가면을 가져다 놓았지만, 결국 손이 불편할것 같아 들고가지 못했다.

 다행히 어젯 밤 카니발에 갈 동행을 한 명 구해 코파카바나 해변 근처에서 만나기로 했다. 메인 카니발은 저녁에 시작을 하고 낮에는 스트릿 카니발을 진행하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랜드마크가 같이 있는 '셀라론 계단'쪽으로 가기로 했다. 우버를 타고 셀라론 계단 근처로 이동하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빵산이 눈에 밟혔다. 여기를 올라가는 비용이 예수상보다 더 비싸 갈 생각은 없었는데, 뭔가 계속 보다 보니 정이 든 건지 안 올라간 것이 좀 아쉬웠다.

신기하게도 카니발 당일에 우버를 키니 우버가 다 가면을 쓰고 있었다. 어디를 가든 빵산을 보는 것은 덤.

셀라론 계단 근처로 오니 드디어 내가 알던 야생의 브라질 모습이 나왔다. 시비를 거는 노숙자,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훔칠 생각만 하는 소매치기, 마약인지 술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 것을 막 들이키는 사람들... 정신을 제대로 붙들고 있어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그래도 이 어지러운 셀라론 계단 앞에서 한국인이 그린 그림을 발견했다. 남미는 이런 소소한 것에서도 한국이 매우 반갑다.

 그래도 다행히 여행객들이 엄청 많아 위협이 크게 느껴지진 않았다. 셀라론 계단은 원래 평범한 계단이였지만 셀라론이란 사람이 자기 이름을 따 만든 뒤로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상태라고 한다. 계단에서 단독샷을 찍고 싶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은 탓에 건질 수가 없었다.

그래고 계단을 찍는 관광객들이 많아 최소한 여기서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찍는것이 허용되는 느낌이였다.

 거리에 있는것보단 셀라론 계단 옆 담장 같은 곳에 앉아 있는 게 훨씬 안전할 것 같아 그쪽에서 스트릿을 구경하기로 했다. 알 수는 없지만 최소한 내가 생각한 축제는 아니었다. 동양인은 우리를 제외하곤 보이지도 않고,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카니발 당일이라 그런지 정말 홍대 9번출구보다 더 바글바글거렸다. 위험한 느낌은 많이 들었지만 그만큼 사람구경하는 재미는 있었다.

 그래도 위에서 한참을 구경하니 어느정도 분위기 파악이 되었다. 그래서 그 친구와 모험을 하기 위해 셀라론 계단 위로 올라가 보기로 했다. 셀라론 계단 위로 계속 가면 브라질의 빈민촌인 '파벨라'구역이 나오는데, 여기가 정말 위험하다고 소문이 자자하지만 축제기간이라 그런지 많은 관광객들이 위로 계속해서 올라갔다. 그에 따라 우리도 올라갔는데, 점점 파벨라 구역에 진입할수록 마약으로 눈이 충혈되어 있는 관광객들과 고성방가를 지르는 관광객 등 미친듯한 공포감을 불러일으켰다. 위로 더 올라가게 되면 정말로 우리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을 것 같아 그 친구와 빨리 내려가자고 해 우리에게 시선이 끌리기 전에 도망치듯이 나갔다.

 어쩌다 보니 셀라론 계단이 아닌 다른곳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다행히 앞에 경찰들이 보이긴 했다(물론 경찰들이 있다고 해서 안전해 보인다는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여기저기 수많은 노숙자들과 시비 거는 사람을 피해 근처의 다른 관광지를 구경하러 갔다. 리우 성당 중 가장 유명한 '메트로 폴리타나 대성당'이 보였는데, 처음엔 성당이 아닌 줄 알았다. 마치 큰 굴뚝 탑 같기도 하고, 피라미드 같아 보이기도 했다. 그런데 내부는 화려한 스테인드 글래스로 되어 있어서 반전 매력을 내뿜었다.

외부에서 봤을 땐 성당보단 탑이나 신전같아 보였지만, 내부는 생각 외로 꽤나 화려했다. 

 아무래도 성당이다보니 긴장을 좀 풀고 친구와 휴식을 취했다. 왜 그랬는진 모르겠으나 다시 셀라론 계단으로 돌아갔다. 아까보다 근처에 시비 거는 노숙자가 더 늘었다. 지갑과 휴대폰을 팬티와 바지 사이에 고정해 주머니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보여주면서 다니는 수준이었다.

셀라론 계단까지 불어난 노숙자들 때문에 휴대폰을 꺼낼 수가 없었다. 위험해 보이지만 이곳이 그나마 안전한 곳이였다.

 다시 셀라론 계단에 올라 한참을 구경하고 있더니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소나기여서 그런지 정말 10분 만에 셀라론 계단 입구가 잠겨버릴 정도로 폭우가 내렸다. 이젠 여기 더 있을 이유도 없을 것 같아 당장 우버를 불러 지하철 역 근처인 센트로 쪽으로 갔다. 다른 관광객들도 지하철역에서 비를 피해 왔는지 지하철 바닥도 물난리가 되어 있었다.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 스트릿 카니발을 즐기던 관광객들이 우루루 지하철로 대피했다.

 우버가 너무 비싸 부담이되기도 해 지하철을 타보기로 했다. 역시나 상파울루처럼 지하철 요금이 우리나라보다 비쌌다. 대신 우리나라급으로 시설이 정말 깔끔했다. 상파울루 지하철은 상태도 별로 안좋고 그랬는데 리우 지하철은 먼지도 없을 것처럼 깨끗했다. 아무래도 지하철 요금이 비싸서 돈 있는 사람들만 타나보다 싶기도 했다.

어느 나라를 가도 우리나라보다 깨끗한 지하철을 찾기 힘들었는데, 의외로 브라질에서 깨끗한 지하철을 발견했다.

 구글맵에 나온 좀 안전해보이는 스트릿 카니발 위치로 이동했다. 그런데 웬걸, 구글맵 지도상 오류인지 아니면 이미 축제가 다 끝난 건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대신 한적하게 빵산을 볼 수 있어 카니발이 아니어도 운치 있는 풍경 감상에 긴장했던 몸이 조금은 풀렸다.

흐린 날 덕분인지 빵산 윗부분이 안개에 가려져 있었는데, 그 장면이 정말 멋있었다.

 성공적이지는 않았지만 어제 슈하스케리아도 가봤기 때문에 더 이상의 슈하스코는 찾지 않고 주변의 다른 레스토랑을 검색했다. 해안선을 쭉 따라 1km 정도를 걸어 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반가운 맥주를 만날 수 있었다. 어제저녁 코파카바나의 노을 마법과 함께 마신 맥주였는데, 어제 너무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서 그 맥주와 라비올리를 시켰다. 오히려 보장된 맛이어서 그런지 어제 슈하스코보다 여기가 훨씬 맛있었다.

가게 분위기와 맥주, 음식까지 다 좋았다. 스페인 맥주만큼이나 정말 기억에 많이 남았던 브라질의 보헤미아 맥주.

 밥을 다 먹고 나오려는데 다시 또 비가 쏟아졌다. 그래서 음식점 앞에서 비를 피하고 있었는데 한국인 관광객들이 그 식당에서 우루루 나왔다. 반가워서 물어보니 좀 있다 있을 리우 카니발을 보려고 왔다고 했다. 한 10분 정도 되는 분들이었는데, 다 60대 이상인 것 같았다. 한국에서 오는 것도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한편으론 정말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나이 드신 분들도 보러 올 정도면 얼마나 규모가 클까, 기대감은 점점 증폭되었다.

 리우 지하철의 수준을 알았으니 비가 그친 후 바로 지하철을 타고 카니발이 시작되는 '삼보드로모'로 이동했다. 삼보드로모 역에 도착하면 카니발 축제를 상징하는 여러 픽토그램 같은 것들이 보이는데, 지하철을 타고 오지 않았더라면 이런 사소한 즐거움을 놓칠뻔했다.

이 아이콘을 봤을 때 가면을 안가져 온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지하철 출구로 나오는 부분부터 바로 암표 전쟁이 시작되는데, 스트릿 카니발급은 아니었지만 이곳도 충분히 위협적이었다. 그래도 난 쫄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대한 가슴을 피고 당당하게 암표상들과 컨택을 시도했다. 듣기로는 홀수 섹터(지하철의 플랫폼 같은 개념)가 가장 좋다고 해 중간 섹터인 7 섹터 표를 구했다. 처음 사보는 표다 보니 이게 사기인지 아닌지 알 수 없어서 암표상에게 우리가 안으로 들어간 다음 돈을 준다고 말했다. 가는 길이 꽤 길었지만 그래도 정말 많은 관광객들이 있어 따라가면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 같았다.

가는 길에 카니발을 대기하는 팀들도 볼 수 있었다. 

 다행이 사기는 아니어서 무사히 들어왔다. 우리는 표 한 장당 30 헤알(한화로 약 13,000원)을 주고 구매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면 저렴하게 구매한 수준이었다. 한국에서는 흥정이라곤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어떻게 해외만 나가면 당당하게 가격을 깎는지 내가 봐도 내 자신이 신기했다.

암표상은 이런 표를 어디서 구하는걸까. 홈페이지에서 정식으로 구매하면 정말 말도 안되는 가격에 판매하던데...

 삼보드로모 내부는 상대적으로 꽤 안전해보였다. 사람은 많았지만 그래도 대부분 관광객이라 소매치기를 하러 온 사람은 크게 보이진 않았다. 드디어 9시가 지나 막이 오르고 함성소리와 함께 첫 팀이 출전했다. 사실 리우 카니발은 축제이자 동시에 경연 대회인데, 내가 본 첫날이 예선전이었다. 이틀간 예선전을 진행한 후 3일 차부터 본선전이 열리는데, 그때가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한다. 어쨌거나 나는 관람할 수 있는 날이 오늘 하루밖에 되지 않았기에 오늘을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첫 팀은 그저 그랬으나 두 번째와 세 번째 팀은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특히 참가자들의 정말 현란한 발재간과 춤은 대단하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새삼 롯데월드가 리우카니발을 정말 잘 묘사했다는 걸 느꼈다. 하지만 춤 실력은 원조랑 비교가 되지 않을정도로 화려했다.

몇시간이나 하는지 모르고 끝까지 봐야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알고 보니 이 축제가 해 뜰 때까지 진행한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 시간까지 버틸 자신은 없고 무엇보다 내일 오전 비행기였기 때문에 최대한 버티고 버텨서 3팀까지만 보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쩌면 매드몬스터 필터의 최초가 아닐까 싶었다...

 그 친구와 헤어진 다음 숙소 근처에 지하철역이 있길래 다시 지하철역으로 갔다. 다들 축제를 즐기는 중이여서 그런지 너무 한적했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나라 지하철보다 더 좋아 보이기도 했다. 다음 역에서 사람들이 꽤 탔는데, 아까 첫 번째로 공연했던 팀들이었다. 개인적으로 말을 걸어보고 싶었지만 흥정할 때의 그 용기는 어디 갔는지 결국 종점에서 내릴 때까지 힐끗힐끗 쳐다보기만 하다가 말도 못 건네보고 숙소로 들어갔다.

공연 잘 봤다고 한마디라도 해 볼걸, 왜 그떈 용기가 안났는지 지금 생각해도 아쉬운 부분이다.

 

 


이 블로그에 있는 모든 사진은 제가 직접 여행지 가서 찍은 것입니다. 사진을 이용하시는 경우 출처를 반드시 남겨주세요.

'여행기(해외)'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웠던 나의 첫 도시  (0) 2021.08.09
누워서 즐기는 카니발  (0) 2021.08.04
리우의 매력이란  (0) 2021.07.26
정 많은 브라질 사람들  (2) 2021.07.24
악마의 목구멍  (0) 2021.07.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