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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아이스에이지

by 메르쿠리오 2021. 6. 14.

중남미 여행 - 28일 차 ; 아르헨티나

 

 그냥 저렴한 가격으로 예약했던 호스텔에서 정말 마지막까지 아주머니가 너무 친절하게 대해줘 고마웠다. 짐까지 맡아준다고 했지만 오늘 일정이 매우 타이트했기 때문에 감사하다고 인사를 한 뒤 버스 터미널에 짐을 맡기고 바로 모레노 빙하행 버스에 탑승했다. 엘 찬튼때 봤던 호수인지는 모르겠는데 물 색깔이 똑같았다. 이 역시 빙하의 녹은 부분이겠지?

가는 길부터 웅장한 설산에 압도되었다. 자전거투어도 가능하다던데, 나중엔 자전거로 천천히 풍경을 보며 달려보고 싶다.

 버스를 탈 때부터 느낌이 좋진 않았는데 결국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인건 빙하에 도착했을 땐 비가 그쳤는데, 대신 구름이 너무 많이 껴 해가 뜨지 않아 전체적으로 우중충해 보였다.
 급하게 왔는데 또 빙하에 대해 하나도 찾아보지 않고 와 어디로 가야 할까 했는데, 버스 기사가 잘 모르겠으면 보트 투어를 하라고 추천해줬다. 그래서 사람들을 따라 보트 투어를 하러 갔다. 예매를 하고 선착장으로 가는 길에 이미 빙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해가 뜰 기미가 보이지 않아 흐리게 보이는 것이 너무 아쉬울 따름이었다.

살면서 처음 본 빙하라 기대를 많이 했었는데, 생각보다 그렇게 설레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안좋은 날씨 때문이였겠지.

 빙하에게는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여행 온 나에게는 흐린 날씨가 무엇보다 아쉬운 것이 빙하가 녹아내리는 것을 볼 수 없었다. 해가 있어야 빙하가 녹아 떨어지는데, 그 떨어질 때의 소리가 마치 천둥이 치는 듯한 소리가 난다고들 얘기해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볼 수 없었다. 여기서 만난 다른 사람은 몇 년 전에 왔을 때보다 확실히 빙하 규모가 줄어 너무 슬프다고 얘기했다.

빙하를 가까이서 보니 빙하 맛이 궁금했다. 빙하 트래킹을 하면 빙하 얼음이 담긴 위스키를 준다는데, 다시 오게 된다면 해 봐야겠다.


 모레노 빙하에서도 마찬가지로 파타고니아 티를 입고 왔다. 피츠로이 때도 정말 추웠지만, 여기는 빙하에다가 호숫바람까지 불어 정말 추워 죽는 줄 알았다. 그래도 파타고니아 옷을 입고 인증샷을 찍는 사람이 나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옆에 있던 한 여자애도 자기도 파타고니아 옷을 입고 왔다면서 그 친구량 서로 꺄르륵댔다.

모레노 빙하를 마지막으로 파타고니아 인증샷을 드디어 다 마쳤다. 이 사진을 찍고 너무 추워서 배 안으로 들어갔다.

 1시간 정도 진행하는 보트 투어 시간 동안 결국 녹아내리는 빙하는 보지 못한 채 더 위의 전망대로 올라갔다. 길을 몰라 걸어 올라가려고 하는데 한 외국인이 셔틀버스가 있다고 타고 가라고 알려주었다. 정말 걸어 올라갔었으면 아마 위의 전망대에 도착하자마자 시간이 부족해 바로 다시 내려와야 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위에서 보니 빙하 규모가 정말 생각보다 어마어마했다. 보트 투어는 빙하의 정면만 보여주니 이렇게까지 빙하 규모가 클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빙하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게 매년 줄고 있다니... 한편으론 오늘 비가 와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전망대 위에서 끝없이 펼쳐진 빙하를 보니 트래킹 욕심이 엄청 났다. 나중엔 꼭 빙하 위에서 위스키 한잔을...

 역시나 가장 아쉬운 건 내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서 버스 시간을 잘못 알아 엘 칼라파테에서의 시간이 없어 빙하를 구경할 시간이 없다는 것이었다. 곧 버스시간이 다가와 전망대 앞 매점에서 빠르게 점심을 때운 다음 바로 버스를 타러 다시 돌아갔다. 보트 투어를 하지 말고 바로 전망대로 갔어도 괜찮았을 것 같았다. 뭐 이것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으니 다음번에 아르헨티나를 다시 와야 할 이유를 만들었다 생각하고 넘어갔다.
 국내선이라 정말 다행이었다. 엘 칼라파테 터미널에 도착하니 1시간 20분 정도 남짓했다. 바로 짐을 찾은 후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체크인을 하고 공항 내부에서 대기하는데 정말 반가운 얼굴이 보였다. 페루 리마에서 같이 저녁을 먹었던 친구들도 부에노스 아이레스행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 친구들이랑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아르헨티나 땅덩어리가 정말 넓다고 느낀 것이, 엘 칼라파테에서 비행기를 타고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3시간이 넘게 걸렸다. 우리나라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을 가는 것보다 길었다. 덕분에 푹 자서 도착했을 땐 초롱초롱한 상태였다.

하늘 위에서 본 엘 칼라파테의 호수는 정말 넓었다. 맑은 날씨였다면 호수 색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인원이 많으면 좋은 점이 음식을 여러 개 먹을 수 있는 것과, 택시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컸다. 이 친구들과 같이 간 덕분에 공항에서 먼 시내까지 저렴하게 올 수 있었다. 서로 숙소에서 짐을 풀고 정리를 한 후에 중간지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내가 혼자이기도 하고 금방 짐 정리를 마쳐 일찍 약속 장소에 나가 시내를 먼저 구경하고 있었다.
 다행히 중간 장소 바로 앞에 꽤 괜찮은 음식점이 있었다. 그래서 들어가 파스타와 스테이크를 하나 시켜 먹었다. 우리가 시킨 스테이크는 마치 LA갈비같이 생겼었지만 두께감이 스테이크답게 꽤 있었다. 거기다 소고기 생산량 세계 2위의 나라답게 정말 맛있는 스테이크가 가격이 한화로 약 만원밖에 안 한다는 건 정말 감동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두께감 장난없는 만원짜리 스테이크와 파스타. 파스타는 숟가락으로 퍼먹을 수 있어서 더 좋았다.

 같이 밥을 먹은 두 친구 중 한 명은 내일 스카이다이빙을 하러 간다고 해 다른 한 친구와 내일 다시 보기로 했다. 헤어진 후에 숙소로 돌아가는데, 남미의 파리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 알게 되었다. 시내의 분위기가 정말 내가 원하는 도시 이미지의 그대로였다. 혼자 맥주 한잔을 하고 들어갈까 하다가 분위기만 좀 느낀 후에 내 인생 최악이 기다리고 있을 내일을 위해 일찍 들어갔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이 거리를 보는 순간, 남미의 파리라는 별명이 왜 생겼는지 바로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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