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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기(해외)

요정들이 사는 온천

by 메르쿠리오 2021. 8. 24.

중남미 여행 - 43일 차 ; 멕시코

 

 새벽 2시쯤, 속이 잠을 깨울 정도로 불편해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분명 배 아픈 거라 생각했는데, 화장실로 오자마자 변기를 붙잡고 토를 했다. 아무래도 어제저녁에 온 고산증세의 연장선이겠지. 저녁으로 먹은 '소폴레'를 고통스럽게 개워낸 후 다시 침대에 누웠다. 지금 봐도 내가 의지 하나는 엄청 강한 듯싶다. 새벽 6시에 똘란똥꼬를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토한 지 2시간 반 만에 다시 일어나 힘겨운 몸뚱이를 부여잡고 화장실로 가 씻고 나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원래는 똘란똥꼬가 아닌 만화영화 코코의 배경인 '과나후아토'를 가려고 했는데, 여기는 최소 1박 2일 이상으로 구경을 해야 한다고 해 당일치기로 많이들 간다는 '똘란똥꼬'를 가기로 했다. 하필 근데 여기서 또 6시 버스를 타야 했는데, 10분 전에 터미널에 도착했으나 앞에 아주머니가 매표소 직원이랑 10분 동안 실랑이를 하는 바람에 결국 6시 차를 타지 못하고 6시 반 티켓을 구매하게 되었다. 근데 정말 생각 없이 오다 보니 똘란똥꼬 가는 길을 하나도 몰랐다. 지금 예매한 버스표는 똘란똥꼬를 가기 전에 들리는 '익스미킬판'이란 마을인데, 이곳에서 또 버스정류장을 찾아 거기서 버스를 타야 하는데 그런 정보를 하나도 모른 채 그냥 버스표만 예매했다. 심지어 멕시코에선 와이파이가 잘 돼서 유심칩도 사지 않고 다녔는데... 근데 정말 인복이 넘치는지 똘란똥꼬를 가는 스페인어 전공을 나온 한 한국분을 버스에서 만나 같이 가게 되었다.

 몸이 작살난 상태라 버스에서 잠을 좀 청하려고 했는데, 버스에서 틀어주는 티비 소리가 너무 커 잠을 도저히 잘 수 없었다. 그래서 포기하고 티비를 보는데, 영화 '위대한 타인'의 멕시코 판이었다. 거기다 넷플릭스에서 본 멕시코 배우가 그 영화에도 출연해 신기해서 계속 보게 되었다. 영화가 다 끝난 뒤 다음 영화가 시작되었고, 얼마 안 있어서 익스미킬판에 도착했다.

 익스미킬판에서 똘란똥꼬를 가는 버스는 2시간마다 있는데, 6시 버스를 타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보통 익스미킬판까지 3시간 정도 소요되고 익스미킬판에서 똘란똥꼬를 가는 버스는 9시 반, 11시 반 이런 식으로 있는데 거기다 버스 정류장도 달라 익스미킬판에서 도보나 택시를 이용해 똘란똥꼬로 가는 버스정류장까지 또 이동을 해야 했다. 결국 우리는 6시 반 버스를 탔기 때문에 여기서 1시간 반을 더 기다려 11시 반 버스를 타야만 했다. 설상가상으로 오늘 유독 날씨가 추워 반바지에 쪼리를 입은 나에겐 고통의 기다림 뿐이었다. 근처 식당에서 아침을 해결해도 추위가 가시지 않아 버스 기사에게 말한 뒤 버스에 탑승해있었는데, 버스 창문은 왜 또 깨져있는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강도를 만났을 때처럼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추워 죽겠는데, 버스가 공포감까지 조성했다. 거기다 문은 죽어도 안닫아준다고 해 벌벌떨면서 버스가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

 출발하기 10분 전쯤, 우리만 가는 줄 알았던 버스에 한 두 명씩 탑승을 하기 시작했다. 어째 가면 갈수록 날이 점점 더 악화되기 시작했다. 나중엔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뿌연 안개가 껴 불안감만 커져갔다.

황천길이 있다면 아마 내가 가고있는 이 길이겠지...

 그래도 이미 탄 버스를 돌릴 수는 없었다. 한 시간을 넘게 달리다 보니 똘란똥꼬 매표소에 도착했다. 인당 150페소(한화로 약 9천 원)를 내고 받았는데, 내가 생각한 똘란똥꼬와는 이미지가 전혀 다른, 이상한 선인장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열심히 달려온 길에선 이런 이미지가 아니였는데, 일단은 믿어보기로 했다.

 똘란똥꼬에 오면서 한 걱정과는 다르게, 저 아래서 두 눈을 의심할만한 경관을 보았다. 동화 속 요정들이 나와 당장 물놀이를 해도 모자랄만한 아름다운 계곡이 보였다. 특히, 물 색깔이 정말 말도 안되게 푸른색이였다. 빨리 저곳에 가서 물놀이를 하고 싶은마음밖에 들지 않았다.

안개를 헤치고 한 폭의 수채화 안으로 들어온 것만 같았다. 어쩜 천연 물색깔이 저렇게 아름다운지.

 같이 온 분들은 1박을 한다고 해 호텔로 갔다. 혼자 물놀이를 하기 위해 아까 그 계곡을 찾아가려고 했는데,  똘란똥꼬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구조가 좀 복잡했다. 셔틀버스를 타고 2~3구간을 왔다 갔다 하는 것 같은데, 한번 셔틀을 탈 때마다 10페소(약 600원)를 지불하면서 이동해야 했다. 그런데 어디로 가야 뭐가 있는지 알지 못해 여기 놀러 온 가족에게 물어봤더니 자기네들도 곧 물놀이를 갈 거라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가까이서 볼수록 계곡 색이 정말 푸른 솜사탕 같았다.

물에서 단맛이 날 것만 같았던 새파란 계곡. 심지어 뜨겁기까지 해 추웠던 똘란똥꼬에서 몸을 녹이기에 완벽했다.

 락커를 이용해야 해서 예상치 못한 금액들이 줄줄 나가긴 했지만, 저런 곳에서 물놀이를 할 수만 있다면...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천연 동굴 온천으로 향했다. 동굴의 아름다운 모습과 천연 온천수로 몸을 녹이니 정말 감탄을 금치 못했다. 내 무지함으로 인해 방수팩을 챙기지 않은 것이 후회될 뿐이었다.

이과수 폭포처럼 절경을 보는것만으로도 모자라, 저 동굴 안으로 들어가 물놀이를 할 수 있다니, 말이 필요없었다.

 6시에 버스를 탔었다면 온천과 물놀이를 더 즐길 수 있었을 텐데, 당일치기였기 때문에 오랫동안 놀지는 못했다. 온천을 끝내고 저 밑에 아까 요정들이 놀 것만 같은 계곡으로 내려가 2차로 놀았다. 날이 추워서 그런지 따뜻한 물에 더더욱 나가기가 싫었다. 그냥 작정하고 1박을 할까 생각도 들었지만, 역시나 그러진 못했다.

잠깐 추웠다가도 다시 몸을 담그니 사르르 몸이 녹아내리는듯한 기분이였다. 정말 당일치기로 오기엔 너무 아쉬웠던 곳.

 익스미킬판에서 멕시코시티로 가는 막차가 5시 반이었기 때문에, 3시 반에 똘란똥꼬에서 익스미킬판으로 나가는 버스를 탈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한국 신혼부부와 미국 친구들을 만나 다행히 길을 헤매지 않고 무사히 멕시코시티로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새벽에 고생했는데도 불구하고 쌩쌩하게 놀았더니, 미친듯한 피곤함이 몰려왔다. 그래도 숙소 앞 소깔로 광장은 활기차게 작은 축제를 진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흥미는 없었기 때문에 도저히 피곤함을 견딜 수 없어서 숙소에 들어가 기절하듯이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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